이자(利子)를 이야기하는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

책이 무거운 이유책 제목 : 책이 무거운 이유
저자 : 맹문재
정가 : 6000원 (할인가 : 4800원)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출간일 : 2005. 08. 30

 

시집을 소개할 땐 ‘일상’ 분류의 ‘시’ 소분류와 겹쳐지니까 좀 고민되긴 해.

허나 좋은 시는 어디 내려않든 어떠냐.

그 흔적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지.

 

이번 시집은 참 특이하게도 이자를 소재로 하는 시들이 많이 실려있다.

사실 이자야 말로 부한 사람은 더 부하게 하고 빈한 사람은 더 빈하게 만드는, 빈익빈 부익부의 핵심이다.

 

입사해서 자동차 할부나 주택대출 받으면 인생 끝났다는 자조적인 소릴 한다.

그거 값으려면 회사에 짤 없이 코 꿰는 거란 이야기다.

다달이 나오는 할부값과 대출이자가 무서워서 회사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거다.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 소득을 앞당겨 쓰는 댓가다.

36개월 할부 계약서에 도장찍는 순간, 10년 만기 주택대출에 사인하는 순간 꼼짝없이 자본주의 사회에 메이는거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행기에서 낙하하는 꿈을 가끔 꾼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위에는 보트가 떠 있는데

필승! 충성! 같은 군대 구호나

안전! 제일! 같은 공단의 구호가 착지점의 표시로 박혀있어

낙하산을 조종하며 내려간다

 

그런데 말일인 어제의 꿈에서는

이자란 구호가 보트 위에 새겨져 있어

나는 경악했다

의아스럽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안 내려갈 수 없어

이자! 이자!

 

바다에 빠지지 않고 내려앉은 다음날

나는 아파트 관리비며 도시가스비며 전기세여 아이들 학원비를

구호를 외치며 납부했다

 

– 착지점, 이자


남자들이 끔찍해 하는 꿈 중 하나가 군대에 다시 들어가는 꿈인데,

말일이 되면 이자 납부하는 꿈까지 꿔야 하는걸까…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말, 누가 했을까?

그 말을 한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사람은 무슨 일에 희망을 가졌던 것일까?

미국의 강점에 대항하는 이라크인들의 절박함이 그런것 아닐까?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고통 떠올리는데

진실이 끝내 승리한다는 믿음을 비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나는 깜짝 놀란다

나이 때문인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인가?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인가?

그래도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져본다

 

[근로기준법]을 짊어진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얼굴을

나는 확실히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시장 일이 아무래도 크게 한판 벌여야겠어요

 

–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다


진실이 끝내 승리한다는 말은 할리우드 영화에만 나오는 시대

그런 결말을 유치하다고 비웃는 세상

거기에 동화됐다가 깜짝 놀란다

아, 아직은 부끄러워 할 줄 알아 희망을 가진다

 

진실이 승리하는 걸 보여준 사람이 할리우드 말고 우리에게도 있어 다행이다

전태일…

 

 

 

다음 몇 편은 감삼 없이 죽 나열해 본다.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같은 집을 지은 거미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거미한테 원망 듣는 것은 무섭고 마누라한테 원망 듣는 것은 안 무섭느냐고 아내가 따졌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는

아내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넘어 잡을 수가 없네요

 

– 집

동석이 어머니가 며칠 앓다가 떨어졌다
외아들인 동석이는 대구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다가 트럭에 깔렸다
아들 없어 업신여김 당한다며 장날마다 술주정하던 산옥이 어머니도 떨어졌다
산옥이네 집에 양자를 준 산옥이 어머니의 시동생 형옥이 아버지도 떨어졌다
손자들 사랑에 마실을 안 다닌 향숙이 할머니도 떨어졌다
점잖기만 하던 대흠이 아버지도 떨어졌다
대흠이 아버지의 큰형님도 떨어졌다
술에 약해 비틀거리며 신작로를 걷던 상호 아버지도 떨어졌다
많이 모자라는 상호는 제 아버지의 장삿날 먹을 것이 많다고 좋아했다
아침마다 우리집에 와 며느리를 흉보던 선희 할머니도 떨어졌다
선희 할머니는 그래도 큰며느리집에서 죽어야 한다고 인천으로 따라갔다
선희 아버지는 그곳 공장에서 일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날렸다
작은아들을 따라 경기도 안산으로 갔던 형숙이 할아버지도 떨어졌다 
키가 말처럼 크고 이야기를 시원하게 하던 형숙이 할머니도 떨어졌다
형숙이 삼촌도 공장 일에 지쳐 시름시름 앓다가 떨어졌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던 형삼이 할아버지도 떨어졌다
착하고 수줍음 많던 형삼이 할머니도 떨어졌다
형삼이 삼촌 상술이는 몇 해 전 농약을 마셨다
우리 할머니와 의형제를 맺은 용수 어머니도 밭고랑에서 떨어졌다

 

– 별똥별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