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

“그러게 말야”

지원은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와 대화하다보면 가끔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복숭아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다.

겉은 부드럽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면 더는 날이 들어가질 않는다.

진짜 감정은 딱딱하게 응결된 채 부드러운 과육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 ‘퀴즈쇼’ 14쪽, 김영하



 

심리학 석사과정 중인 완돌이의 말이 떠올라

 

형은 되게 열려있고 솔직한 사람인데,

일정 깊이에 들어가면 절대 열어주려 하지 않는 강한 막 같은게 있는 것 같아

심리적 저항(반동이었나?) 같은 거


 

 

이어서 조하리의 창 이론이 연쇄적으로 둥둥 떠올라

 

사람에겐 네 개의 창이 있다.

I know, You know

I know, but you don`t know

I don`t know, but you know

I don`t know, you don`t know


 

겉은 가볍게 쥐어도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무른데, 어느 깊이에선 칼도 안 먹히는 복숭아.

그 복숭아 씨앗이 자리한 지점이

 나는 모르고 너는 아는 경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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