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의 양식을 가늠해보는 한 기준은, “그 사회의 소수파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라고 한다. 장애자를 위한 정부예산은 그 국가의 국민 총생산에 비례하지 않고, 그 국가의 민주화 정도에 비례한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민주화란 것은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고통받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수의 사람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이겠다.
조갑제 씨가 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의 머릿말이다(http://wakenote.com/book/9264). 아무리 개팔자가 상팔자라 해도 인권 밑에 견권있다. 캐나다가 개와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 양식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얘네는 행인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대형견, 중형견, 잡종견이 많다
역시 세계 2위 국토답게 땅이 넓다 보니 개들도 다들 크다. 밴쿠버나 토론토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형견 일색이다. 이보다 인상 깊었던 게 순수 혈통 개가 잘 안 보인다는 점. 한국으로 치자면 큰 바둑이 같은 애들이 많다.
원래 유전학 개념으로 보면 이종 교배로 생성된 개체가 동종 교배 개체보다 건강할 수 밖에 없다. 캐나다 개와 한국 개의 체력이나 건강 정도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차이가 크지 않을지.
음식점 앞에 개를 묶어둘 수 있는 고리가 있다.
이건 마치 그 사회의 육아 인프라처럼, 개를 키울수 있는 인프라의 비교가 될 것 같다. 캐나다나 미국 음식점 중에는 입구에 개를 묶어둘 수 있는 고리가 나란히 박혀있는 곳들이 있다. 마치 마차타고 다니던 시절 마굿간 비슷한 느낌이랄까.
아래는 시애틀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모습. 개를 묶어둘 수 있는 고리와 함께 우푸우푸라고 적힌 개 전용 물그릇도 있다. 특히 저 물그릇은 북미에서 어느정도 정착된 것인지, 혹은 스타벅스가 빠른 와이파이처럼 하나의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는 건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