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는 곳이 곧 나’라는 표현이 있다. 영양학이나 생리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문화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는 표현. 캐나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통해 이 사회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결국 캐나다 사회를 이해한다는 거대담론을 건드린 것은 아니나, 개인 소감을 미리 정리해봤다.
– 외식이 비싸고 밖에서 술 먹는 것도 여러모로 빡세서 집 안에서 먹고 즐기는 게 일상이다.
– 캐나다는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살러 가는 곳’이란 인식이 강화됐다. 한국인 여행객 입장에선 식도락 여행을 할 만한 곳은 아니다. 물론 세계 여러나라 음식이 모여있는 장점이 있지만.
– 캐나다 음식이 이렇게나 짠데도 소금 섭취량은 한국이 더 높다는 걸 듣고, 국가 정책 혹은 한 가정의 노력으로 ‘맛있고 건강한’ 음식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짜고 단 맛을 즐기되 실제 섭취량은 낮은 식단을 만들면 된다.
외식은 비싸고, 식재료는 싸고
관광객 입장에서 캐나다 외식 물가가 비싸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세금과 팁 때문이다. 예를 들어 7달러라고 적힌 라면을 먹어도 실제 계산할때는 세금(연방정부 세금+주정부 세금)과 팁이 붙어 거의 10달러쯤 된다. 환율은 오르락 내리락 하므로 그냥 물가 비교를 위해 1달러=1천원이라 보면, 집 밖에 나가 남의 밥 먹으면 어지간하면 다 만원인 셈.
비싼 외식비의 원인을 캐나다 사회 내부에서 찾아보면 높은 임금 때문(혹은 덕분)인 듯하다. 주마다 다르지만 최저 임금이 대게 1만원 이상이라고 한다.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게 한국으로 치자면 ‘어엿한 정규직’ 구실을 하는 셈.
외식 물가에 비해 식재료는 싼 편이다. 식재료는 비싸고 외식은 상대적으로 싼 한국과는 정 반대다. 특히 재밌는 점은 각 민족이 주식으로 먹는 식재료는 대게 면세라는 것. 유럽의 주식인 빵이나 감자, 아시아의 주식인 쌀이 모두 면세품이란다. 캐나다 문화를 상징하는 ‘모자이크 문화’가 세금 정책에도 당연하게 반영 된 듯.
가장 저렴한 식사는 맥도날드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팀 홀튼 같은 패스트 푸드 점은 셀프서비스라 ‘공포의 팁’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내가 다녀 본 맥도날드 매장은 모두 음료 디스펜서가 매장 한가운데 나와 있어 소비자가 알아서 컵에 채워먹는 형태였다. 이럴거면 컵 크기별로 가격이 다른게 의미가 없다 싶은데, 캐나다가 신뢰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님들이 컵 크기에 맞춰 음료를 가져갈 거라는(리필이 없을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게 맥도날드의 음료 공급기(디스펜서). ‘루트비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게 만화 피너츠의 스누피가 마시는 맥주(처럼 보이는 음료)다.
캐나다 백반집, 올 데이 블랙퍼스트
한국에서 백반, 김치찌개, 된장찌개처럼 가장 기본이 되고 저렴한 한 끼 외식은 ‘올 데이 블랙퍼스트’란다. 근데 이 조차도 세금과 팁을 고려하면 1인당 10달러 꼴이라네.
캐나다와 미국 여행 중 여관(inn) 간판에 ‘컨티넨탈 블랙퍼스트’라는 문구가 많아 찾아봤다. 컨티넨탈은 단어 뜻 그대로 대륙을 가리키고, 컨티넨탈 블랙퍼스트는 유럽대륙의 일반적인 아침식사 형태를 일컫는 표현이었다. 빵과 주스, 커피를 제공하는 간단한 아침식사라는 뜻.
반면 잉글리쉬 블랙퍼스트는 계란, 베이컨, 소시지 등 육류까지 곁들인 든든한 한 끼 식사. 영국 사람들이 유럽에서도 유독 고기를 많이 먹는다네. 그래서 영국식 아침은 고기가 꼭 포함된 든든한 아침 상차림이란 표현이란다.
이건 친구가 만들어 준 코리안+콘티넨탈 블랙퍼스트 쯤?
북미의 맛은 ‘단짠’
날이 추워 그런지 대게의 음식들이 달다. 그리고 짜다. 얼마 전 맥도날드에서 단짠을 키워드로 소금과 초콜릿인가 뿌린 아이스크 메뉴를 만들었던데, 단짠의 원조가 캐나다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게의 음식이 짜다. 그리고 단짠은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북미 전반의 일반적인 맛이라네.
얘네들이 이렇게 짜게 먹는데 염분 섭취량이 한국이 더 높다는 게 납득이 안 돼 조금 찾아봤다.
– ‘소금이 퍼져 있냐 뭉쳐 있냐 하는 집중도의 차이가 음식을 짜게 느끼는 정도를 결정한다. 실제 염분함량과는 관계없이(http://m.koreadaily.com/read.asp?art_id=4247358_)
– 즉, 실제 우리가 식사때 느끼는 짠맛의 정도와 실제 섭취하는 염분량은 다를 수 있다는 것.
– 이는 바꿔 말하면, 적당히 달고 짜게(=맛있게) 먹으면서도 실제 섭취량은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단 이야기
– 국가의 식생활 관련된 정책과 가정에서의 식습관/조리습관이 맛있고도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
– ‘[음식] 미국음식은 왜이렇게 짠가요???’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8468127)
밴쿠버 중심가에서 ‘씨푸드’의 일종이라고 해서 국 형태로 된 걸 먹었는데, 너무 짜서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혹시 요리사가 간을 잘못 한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
아래 사진은 앨크 생고기. 앨크는 아주 거어어대한 사슴이랄까. 이 음식은 한국으로 치면 육회, 겉을 살짝 익힌 참치 타다끼처럼 생겼다. 맛은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음. 예식장 가면 육회부터 찾아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한국식 육회의 맛은 아니었다.
고기를 빠게트에 올려 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추가금 내고 주문했는데, 서양애들은 우리가 육회 비빔밥 먹듯 먹는 거겠지? 빵과 생고기의 조합이 아직은 뭔가 어색
캐나다에도 한국음식은 대중적
요번에 영주권이 나온 친구 이야기 들어보니, 캐나다 현지 동료들도 한국 음식을 어떤 경로로든 다들 먹어봤다고 한다. 코리아타운 설렁탕 집에서 뚝배기를 한국식으로 후루룩 들이키는 백인 아저씨도 봤다니, 결국 맛이라는 건 기호의 문제. 한식이 우월해서라기 보단, 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일정 이상의 기호 층이 생길 것 같다.
아래 사진은 토론토 대학에서 발견한 한식 푸드트럭. 잠깐 기다려 봤는데 한국인 유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만 사가더라…
한국보다 확실히 싼 스타벅스
신문 경제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 스벅 커피값 한국이 본토보다 비싸다. 한국에선 비싸도 팔리니 스벅 입장에선 가격 내릴 필요가 없을 것. 이미 국내 프렌차이즈 커피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이고 한국 내 매출액만 1조원을 넘었다고 하니.
아래는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인근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 그냥 기념품 가게 수준이라면, 여기가 진짜 스타벅스의 심장이란 느낌이다.
알콜 라이프 만큼은 한국이 천국
주류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500미리 캔맥주 하나에 2~3천원 하고 보드카나 각종 스피릿 류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가격보다 맥주 종류의 다양함, 특히 토종 맥주의 다채로움이 부럽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구매와 섭취의 까다로움이다. 술은 LCBO나 비어샵 등의 이름으로 주정부가 관리하는 주류 전문 매장에서만 살 수 있다. 최근 들어 월마트 같은 대형 매장에서도 팔기 시작했단다. 다만 시골에는 수요 문제로 주류만 파는 매장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동네 슈퍼에서 같이 취급하기도 하더라. 온타리오 주의 한 시골에서 한국인 부부가 하는 슈퍼마켓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어떻게 이런 외딴 곳에 정착하게 되었을지. 생활은 만족하실지 궁금하더구만.
구매의 까다로움 보다 더 놀라운 건 마실 때의 까다로움이다. 야외, 그리고 술집에서도 지붕이 없는 곳에서는 못 마시는 규제 조항이 있다. 즉, 불법이다! 술집에서도 지붕이 끝나는 기둥에는 ‘이 선 넘어서 술을 들고 가면 안 된다’는 경고 문구가 적혀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법이 시행되면 난리 날거다. 이게 빨갱이 법이냐 나찌 법이냐며 좌파 우파 일심 단결하여 반대할 듯.
여러모로 주류 관련해서는 한국인이 보기엔 속 터지는 규제가 많다. 이런 사회에 있다가 한국오면 헤븐이 펼쳐지는 거지. 안전한 밤거리, 저렴한 술 가격(특히 사서 마시면).
아래 하이네켄 케그의 가격을 참 착한 환율 1달러 840원으로 계산하면 대략 3만원(세금포함)이 나온다. 이마트에선 보통 5만원.
기타 단상
– 미국처럼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보니 전통 음식이나 범국가적 대중음식은 없다고 봐야겠다. 그보단 각 민족 음식이 다 모여 있고 이걸 한 자리에서 다 맛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야할 듯.
– 한국 여행자 입장에선 세금과 팁이 별도인 가격 정책이 불편하다. 팁이야 워낙 서양 고유 문화라니 별개로 한다쳐도 세금까지 따로 표기하는 게 소비자 친화적이지 않다는 인상. 물건을 살 때 마다 내가 ‘피 같은 세금을 내는 납세자’라는 자각은 강하게 들긴 하는데, 이러면 보통 납세 저항이 커져 정부가 싫어하지 않나? 하긴 이것도 일상이 되면 의식하지 않을 듯. 여튼 가격표에 적힌 금액이 실제 지불 금액인 한국의 가격 표기 정책이 소비자 입장에선 더 편리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