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이세돌

다큐멘터리 영화 ‘알파고’를 보고.

유럽 체스 챔피언 판 후이가 알파고에게 패배한 장면에선, 산업혁명 이후 숱하게 겪었을 인간의 패배가 떠올랐다. 가장 빠른 인간도 어중간한 차보다 느릴 테고, 가장 힘센 인간도 가장 작은 크레인의 상대가 안 될 터였다. 암산 신동도 중국산 싸구려 계산기의 상대가 안 되는 것처럼.

이세돌이 4국에서 이겼을때는 존 헨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굴착기와 터널 뚫기 대결에서 이긴 후 바로 사망한. 

4국과 5국 인터뷰 장면에선 눈물 나더라. 건조하게 보면, ‘간발의 차로 계산기보다 계산을 빨리 끝낸 인간’ 에피소드에 불과할텐데. 아마 이세돌 태도에 감명 받은 게 아닐까. 마지막 다섯번째 대국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바둑 하길 잘했다’

승패는 결과일뿐, 바둑의 길을 찾던 사람이, 알파고를 통해 또 다른 길을 발견하고 느낀 희열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새로운 길이 열리고 거기로 처음 나서봤으니, 그간 이 길을 걸어오길 잘했다는 말이 나온게 아닐까. 그 한 마디에서 길을 찾는 ‘구도자’의 태도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웠다.

* 알파고를 보고 조 헨리를 연상한 사람이 많나보다.


[유레카] 존 헨리와 이세돌 9단 / 구본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31737.html#csidx1535a7266d25aa0957c97fa317e34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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