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에 쓴 독후감. 석달이 지난 지금도 혁명은 조용히 퍼져나가고 있다. 생각보다는 급진적이지 않은 속도로, 하지만 불가역적인 방향으로.
‘AI 등장과 도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우리가 논해야할 지점은 AI 도입 여부가 아닌 활용 여부!’라는 식의 책은 이제 그만 나와도 되지 않을까. 아니, 내가 이미 그런 마인드 셋을 가지고 있다 보니 나만 그리 조급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구평평설을 주장하는 사람과도 동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거니까.
- 어떻게든 부정하고, 생성 AI는 엉터리고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 생성 AI를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이용해보려고 노력한다.
- ‘이건 그냥 마술일 뿐이야’라고 생각한다.
1번 태도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 꼰대 같은 소리다. 태도 2와 태도 3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3번 태도만을 취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3번에서 2번으로 바뀌는 이들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3번 태도, 그러니까 마법 이론은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해내는 혁명적 기술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이건 시작에 불과해”라며 소셜 미디어에 방금 본 테슬라 광고를 공유했다고 가정해보자.
댓글 대다수는 “야, 마법 같아”라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마법 같아”라는 반응은 “그럼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하지?”, “진짜 내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겠어”, “양봉이 돈 된다던데…” 등과 같은 표현이다. 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패배주의다. 우린 해리 포터의 머글이 아니다. 생성 AI는 마술이 아니며, 인간이 즐겨 써야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물론 인공지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직업도 있다. 양봉은 아마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돌봄 노동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른바 지식 전문직 대부분은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AI 양봉도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 문제일 뿐’으로 접근하다 보면 ‘누구나 죽는 건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수준의 대담으로 치닫게 된다. AI로 바로 대체되는 것과, 상당시간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건 인정하고 논의해야 건설적 논의나 대응이 될 것.
■ 위키피디아가 처음 나왔을 때는 전통 백과사전보다 좋지 않았다. 특히 초기에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는 전통 종이신문보다 좋지 않다. 많은 오류와 허위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구글의 초기 검색 서비스는 야후의 색인 검색 서비스보다 좋지 않았다. 적지 않은 수의 오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요점을 놓치고 있다. 특히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은 예외 없이 오류에 취약하다. 그러나 이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전 기술을 추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따라서 ‘오류’를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로 정의하려는 기술 담론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런 기술 담론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될수록 비역사성을 띠는 경향이 있다. 컴퓨터의 인간화 수준이 아직 원시적일지라도 충분히 높은 정확도만 있다면, 다시 말해 오류가 있더라도 컴퓨터와의 대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또한 컴퓨터는, 다시 말해 LLM은 세상의 올바른 사실과 규칙으로 길들일 수 있다. 앞서도 강조한 것처럼 오류는 기술 진보의 지렛대다.
완벽한 기술은 없다. 특히 초기에는 더욱 그렇다. 100년전 자동차가 도입 될 때도 마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엄청 공격 받았을 거다. 더 느리고 더 비싸고 더 비효율적이었을지도.
100년까지 갈 것 없이, 현대에도 엑셀 계산을 못 믿겠다며 수기로 다시 정합성을 맞춰보는 직장상사 에피소드가 인터넷에 떠돌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