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20주년 기념,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탐방

2004년 10월 25일

2002년 9월 26일 입대, 2004년 10월 25일 전역.

입대 당시 26개월이던 군 생활이 노무현 대통령 공약으로 점진적으로 줄어 25개월이 됐다. 얼추 20년 만에 다시금 부대를 찾았다.

GOP와 FEBA를 번갈아 생활하는 전방 부대 특성이기도 하고, 지난 20년간 부대 통폐합이 진행되다 보니. 내가 근무했던 곳엔 이제 다른 부대 간판이 있었다. 그렇다면 군대 행정상으로 속했던 특정 연대/중대/소대에 가서 향수를 느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물리적으로 내가 생활한 그 공간에서 향수를 느껴야 하는 걸까.

짧게 생각해봐도 후자다. 이럴 때는 서류가 공간을 이길 수 없다.

그래도 새 단장은 한 원통터미널

전역 10주년 기념으로 갔을때는 정말 현역 시절이랑 하나도 안 달라졌다 싶었는데. 20년 지난 지금은 그래도 건물이 어느정도 단장은 되어 있더라.

마침 찾아 간 날 하늘이… 너무 식상하지만 절로 나오는 표현을 못 참겠더라. 한국의 알프스.

22년 전엔 저 2층 강남포차 가게가 PC방이라. 100일 휴가 복귀하며 마지막으로 내 홈페이지나 싸이월드, 세이클럽 방명록 훑어보고 들어갔는데. 이제 다들 휴대폰을 들고 다니니 PC방은 정말 게임하려는 병사들 말고는 갈 일이 없겠네.

10년 전쯤 왔을때는 병사들이 들고 온 휴대폰을 보관해 주는 상가가 성행하던데. 그 비즈니스 모델 생명력이 끝나버렸네.

최소 22년 이상 한 자리에서 영업중인 신진사. 후임 중 신진섭이란 운전병 친구가 있었는데. 워낙 넉살 좋은 애라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개점휴업인 한국DMZ 평화동산

원래 이 자리에 미군들이 쓰다 버린, 아니 남기고 간 M47전차를 재활용해 엔진은 떼고 포만 살려둔 고정포가 있었는데. 10년쯤 전에 가 보니 뭔 공원이 들어서더라.

근데 다시 10년 후인 오늘 가보니. 반쯤 폐허 비슷하게 되었던데.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코로나 때문에 경영이 어려웠나 보네. 정부 기관이 아니라서 후원금을 통해 어찌저찌 수를 내 보려나 보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이랬던 공간이

이렇게 무슨 판의 미로 비슷한 느낌으로 변했다.

이렇게 전경을 찍으면 녹화가 잘 된 시설 같지만. 하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산책로 걷다 노루랑 마주쳤다. 작은 말인줄 알고 나도 놀라고 걔도 놀랐다.

보안 문제로 부대 사진은 안 되고. 담벼락 문구가 너무 직구라, 오히려 참신하다 싶어 찍어왔다.

좋은 부대라. 그래, 시간 지나면 모두 맘 속에 좋은 부대로 남게 되지.

서화리 버스정류장 뒤편 논밭.

전역하던 2004년 10월 25일 새벽. 눈물이 그치질 않아 동기 낌대랑 버스표 끊어놓고 잠시 이 근방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가을걷이 끝난 논이었는데. 위치상 아마 이곳 어디쯤이었던 듯. 그때는 뭐가 그렇게 눈물나게 했던지. 수도꼭지 튼 것처럼 나더라는 물리적 현상은 기억나는데. 정확히 그게 어떤 심경이었는지는 가물하다. 역시 물리력이 사고력보다 강한건가.

위수지역이 사라진 건지. 이제 아무도 천도리로 외박을 나오지 않나 보다. 10년 전에 왔을때는 낡았도 상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아예 상권 자체가 사라져버렸더라.

위 사진은 놀랍게도 22년 전 동기랑 외박 나와 비디오 빌려봤던 대여점. 그럼 이 곳은 최소 20년 동안 다른 업장으로 활용못한채. 하염없이 방치된 건데. 새삼 놀랍네.

평화는 돈이 된다, 전차진지가 팔각정으로

평화는 돈이 된다. 과도하게 비생산적으로 들어가는 군사 비용을 아낄 수 있을 뿐더러, 군사 시설을 관광 시설로 바꿔 돈을 더 벌어올 수도 있다.

생각해보니 군사적으로 가치 있는 공간은 관광지로도 매력적이다. 군사 진지나 거점은 적 동태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쉽게 말하면 경치 좋은 자리라는 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차진지였던 이 곳. 내겐 낯선 이름. 비득고개광장.

천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요충지라, 중요한 방어 거점이었다.

정확히 지금 정자는 있는 위치에 매복해 동태를 살폈고. ‘판초 우의 입은 우리 고참이 쪼그려 앉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퍼득이며 날아가는’ 독수리를 목격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 적도 경치도. 한 눈에 담긴다.

자대배치 받을 때 들르던 38선 휴게소 대신, 이제 스마트복합쉼터라는 트렌디한 휴게소에 들렀다. 트렌디하긴 한데. 대체 뭐가 스마트하고 복합인건지는 당최 알 수 없다.

스마트복합쉼터에서 찍은 소양호 사진 두 컷.

평화가 오면서 군사시설이 관광시설로 바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듯, 나의 20년 전 군생활 경험도 이제 누군가에게는 관광담이 되어 뭔가 가치를 창출해 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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