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되세요’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시대로.

퇴사자들 모여 퇴사 이유나 현재의 어려움이나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를 이야기하는 짧은 만남이 있었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정의했으니, 이런 모임도 콘텐츠겠지.

총 이틀간 누적 열댓시간 이야기하다 보니 나도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결국은 여럿이 대화하지만 결국 나 스스로와의 대화였던 생각이 든다. 일 자체에 대한 내 시각이 좀 더 선명히 정리된 것 같아 아래와 같이 후기를 공유했다.


1.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지금 직장인 사이에 가장 널리 통용되는 덕담이자 밈 아닐까 합니다. 이 비슷한 걸 20년 전에 봤던 기억이 납니다.

‘부자되세요’
배우 김정은이 나왔던 BC카드 광고.

돈이 안 중요한 시대는 없었겠지만, IMF이후 ‘각자도생’이 한국살이 불문율이 됐다고 보는데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부자 외에 ‘적게 일하자’는 조건까지 붙었습니다.

2.
워라밸이란 키워드를 뜯어보면. ‘일’이란 건 거의 방사능 피폭 급 대우를 받는 것 같아요. 살아가기 위해 자연 방사능에 일정량 피폭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검진 때 엑스레이도 자주하면 안 된다고 몸을 사리는 것처럼요.

야근 많고 빡세다는 직장은 거의 체르노빌 처럼 보지 않나. 적게 받는데 일 많은 분을 바라볼때면 측은지심을 넘어 호구 정도로 보는 시선도 있지 않나 합니다.

배운게 사회과학인지라, 사회 문제의 원인은 구조에서 찾고 당장의 해법은 내게서 찾는 편인데(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하니). 일이 이렇게 천대받는 게 개인이 게을러서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저도 열심히 뛰어들었던 일확천금 투기성 시장을 보면 근로의욕 저하되는게 당연지사. 40,50대 부장들이 3억에 샀던 아파트가 10억이 된 걸 깔고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20대 신입사원 들이 의욕이 날까요.

불확실한 아웃풋을 고려하면 확실히 컨트롤 할 수 있는 나의 인풋을 최소화하는게 합리적 판단이라고 봅니다. 적게 일하고 확실하게 적게 받거나, 적게 일하고 재수좋게 많이 버는 걸 기대하기.

3.
사회 이야기 같은 거대담론은 됐고, 그럼 나는 어케 할거냐? 그간 10여 분과 함께 대화했지만, 실은 저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답하던 시간이 퇴사의 희열 1,2 아니었나 해요.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사안이 선명해진다. 내 일이 남의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일 많이하면 호구다. 많이 일하면 많이 괴롭다. 이 연결고리를 끊자.

역으로. 일하는게 기쁘다면, 많이 자주 일하면 많이 자주 기쁘다. 애초에 자질이 영 없다면 일이 기쁠리 없고, 많이 하다보면 잘 하게 되잖아. 그럼 내가 일을 잘 하는데 많이까지 하는데 돈을 적게 받을 리가 없잖아? 이런 단순한 인버스 구조 성립.

재밌는 일 찾아 최대한 많이 일하고 많이 즐거워하면서 많이 벌자. 근데 많이 안 벌려도 어쩔 수 없지. 재밌었으니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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