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혼_모임 후기

‘결혼과 가족관계’라는 대학교 인기 교양강좌가 있었는데, 비슷한 느낌이 나는 일회성 모임에 다녀왔다.

모임에서 연애와 결혼을 위한 이런저런 조건들이 이야기됐는데. 그 숱한 조건 각각이 모두 다 심정적 이해는 되나. 나열되는 조건이 많을수록 실은 연애와 결혼을 안 하겠다는 말을 돌려 표현하는게 아닐까 싶다.

조건을 따지는 시뮬레이션은 중요하지만, 삶은 시뮬레이션 안에서 돌아가는게 아닌지라.

이런 모임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지만 돌아와 생각을 정리해보면 결국 나와 대화한 시간이었다. 아래는 모임 참석자들에게 공유한 나의 후기.


연애와 결혼 접근법

  1. 어렵게 만들지 말고 쉽게 풀자
  2.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쉽다
    이 둘이 저의 연애, 결혼 문제 풀이법인데요.

저도 이 기준이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습니다.

예전에 ‘결혼을 해야하나?’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리기 위해, 신림역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결혼’ 키워드로 검색해 책 15권을 사 와 추석 연휴때 읽었어요.

세상에 결혼만큼 케이스 스터디가 넘처나는 건 없다. 시대의 천재들은, 그리고 인생 선배들은 결혼이란 문제를 어떻게 풀었나. 그들의 해답지에서 내가 채울 답안지를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나름으로는 상당히 조사하고 학습하고 궁리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결혼을 못해서 실패가 아니라, 결혼 문제에 대한 적절한 접근법도 아니었고 결혼에 적합한 마인드 셋을 갖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푸는 문제가 아니더군요.

이성을 만나는 건 양자역학이 아니다. 그냥 예스 노라는 이분법이다. 0이냐 1이냐. 만날래 말래. 1비트 정보량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

효율과 효과

물론 확률을 높이는 건 중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제 인생 길잡이로 삼는 개념이 ‘기대값(발생확률*예상손익의 총합)’일 정도로요.

근데 확률 ‘놀이’만 해서는 영원히 1이 되지 않더라고요. 근육으로 몸 만드려는 이들이 운동 정보 끝없이 찾아봅니다. 더 효율적인 뭔갈 찾으려(=실은 이게 저).

근데, 아무리 정보를 모으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도.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 헬스장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이뤄진다는 걸. TV 프로그램 속 남의 일로 볼때는 너무 잘 압니다.

‘만날 확률 몇 퍼센트’ 같은 효율 이전에, 만날 거냐 말거냐의 ‘효과’ 문제더라고요. 로또 확률 동호회가 완벽한 로또 필승법 발견 전까지 로또 구매를 미루는 격이랄까요.

어렵게 풀려면 끝이 없습니다. 시대의 천재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은 죽기 전까지 이해못하고 부인했다는데. 연애와 결혼을 양자역학 문제로 만들면 범인이 어떻게 풉니까.

그런데, 결혼 적령기 여성 분의 복잡한 심경은 또 십분 이해갑니다. 몇년전에 ‘어떻게 하면 나를 만나줄 여성들의 맘을 이해할 수 있을까’하며 시뮬레이션 해 본적이 있는데요.

최대 라이벌 푸들

연애와 결혼 과정에서 제 최대 라이벌은 ‘푸들’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결혼 적령기 여성은 이미 사회생활 통해 어느정도 사회적인 성취와 자산을 쌓았을 겁니다. 본인의 세상을 어느정도 구축한 상태인거죠.

자기가 만들어 온 세상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이성을 만나고 결혼하는거지. 파멸시키려고 남자 만나는 여자는 없잖아요. 이 관점에서 보면 수컷과의 결혼은 너무 리스크가 큽니다. 코인으로 치면 급등할수도 있지만 급락할수도 있죠.

어차피 잃을게 없는 사회 초년생이면 베팅이 더 쉬울 수도 있지만. 내가 출근길 지옥철과 십수년간 싸우며 쌓아온 사회적, 정서적, 경제적 자산을 걸고 도박하기는 어렵습니다. 심지어 남자 잘못 만나면 나 뿐 아니라 집안까지 패가망신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푸들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확실하고 예상 피해는 구체적이며 제한적입니다.

1인당 GDP 3만 6천불 나라에서 물리적으로 굶어죽는 일은 말이 안 되고. 이런 먹고사니즘이 해결된 곳에선 귀여움이 최고의 가치 아니겠습니까. 근데 푸들은 거의 100% 확률로 귀엽습니다.

얘네들은 사냥, 집지키기, 마약탐지 류의 그 어떤 실용적인 일도 못 합니다. 그런데도 애완견 1위 품종입니다. 아니, 생존을 위해 귀여움에 몰빵한 종자겠죠. 얘네 입장에선 종의 생존을 걸고, 즉 목숨 걸고 귀여운 겁니다.

그러니 인간 수컷이 푸들과 귀여움으로 경쟁이 가능할리 없죠. 본인이 푸들보다 귀엽다는 남자가 있다면 오만을 넘어 공상일 듯.

반면 푸들이 입힐 수 있는 리스크의 하방은 뻔하게 막혀있습니다. 배변 실수나 집을 어지럽히거나 아플때 들어가는 병원비 정도. 십수년 가량의 수명 내에서 입힐 수 있는 피해 정도는 몹시 구체적이고 한정적일 테죠.

동물병원비 비싸다 해봤자 남편이 음주 교통사고로 전손 내는 것과 비교한다면?

예상 손해와 손실 고려시, 입장바꿔 내가 결혼 적령기 여성이라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를 ‘나’를 만나기 보단 100% 확률로 귀여울 ‘푸들’ 키우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다시 인간 수컷 입장으로 돌아와, 어차피 이런식의 확률 싸움으로는 답이 없더라고요. 코인 100개중 99개 잡코인은 결국 나락가긴 하던데. 확률적으론 그러하지만 푸들보단 나를 좋아할 누군갈 만나러 가면 된다 싶습니다. 안 되면 별수없고.

참고로, 제 라이벌 2위는 코커스패니얼 3위는 킹 찰스 스패니얼 입니다. 귀여움이 미침.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