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맞은 국수는 그 아픔을 이해하네 ‘칼국수’

칼국수는 아픈 음식이다
실연한 후배와 먹는 늦은 점심
늦어서 더 쓸쓸한 공복 칼국수로 다스리며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깍둑깍둑 바람 든 무깍두기 반찬 삼아
우정시장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아 먹는 칼국수
듣지 않고서도 후배의 상실 다 알 수 있다
말하지 않고서도 내 마음 다 전할 수 있다
모름지기 시인의 사랑은 아파야 하느니
아픔 속에서 눈뜨는 사랑의 눈으로
칼국수처럼 잘려나간 세상의 아픔
따뜻한 멸치국물로 한 그릇 잘 말아야 하느니
칼국수를 먹는다
국수는 쓸쓸한 공복 넉넉히 채워주고
칼은 홀로 떨어져나와
아픈 사랑의 상처를 촘촘히 벤다
베어진 아픔의 단솥 국물 속에서 다시 끓고 있다

-정일근,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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