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에, 말 하나에, 무엇이든 단 하나에 인생이 변할리야..

아버지는 어린 내게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 속에서 망망대해를 떠돌더라도 살아남고 싶어 했던 그 아비의
아이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나
진 자가 되었다. 나는
가끔 오른 손목 동맥 근처에 그어진 송충이처럼 생긴 칼자국을 바라본다. 난 적어도 책 한 권에 인생이 변했노라고 말하는
비열한 인간은 되기 싫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원숭이들은 대충 다 무슨무슨 원숭이로 분류되는 것처럼 나와
내가 사랑했던 그대의 種名은 지난 날이다. 저
걸레로 닦아내고 싶은 검은 안개다. 쉽게 말해서 나는 여름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언덕에서 반짝이는 이유가, 그들의
잎사귀 앞면과 뒷면의 푸르름의 진하기가 다르기 때문임을 너무 일찍
스스로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대라는 도끼가 찍고 난  뒤에 파인
떡갈나무의 바로 그 자리, 진물이 흐르는
상처가 되고 싶었다. 헐떡거리며 뭍에 오른
아가미이고 싶었다.

창 밖으론 보름달이 홍역을 앓고 있다. 바로 그때 나는
방에 엎드려 성삼문은 죽고 한명회는 정승이 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문장으로 쓰고 있던 우울이었다. 그저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기 바라던 사람들의 물살에 휩쓸려 가고 있을 뿐이었고,

바다의 금붕어
늪의 상어
태양 아래 두더지

라고 그들은 나를 표현했다. 어쩌면
사랑하는 그대도 그랬는지 모른다. 여름이 아교의 끈적끈적한 감촉으로
내 산책의 닳은 구두 밑창을 핥던 그 해, 난
수음 직후의 뿌연 형광등 불빛 같은 생을
물 말아 먹어버렸노라고 말해 주었지만
도대체가 그들은 날 복어탕의 미나리 정도로밖에는 생각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 혈관에
쥐약 1g의 치사량이라도 있었더라면 피에 물들지도
눈물에 번지지도 못했던 이 슬픈 옷깃에 묻은
안개의 굵은 입자 따윈
쉽게 털어낼 수 있었을 텐데 이제

비로소 누군가에게 나는 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나의 낱말들을 어려워 하고 심지어는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기에 내 죄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다. 눈물의 마른 자리가 얼마나 더러운지도,
오늘이라는 노비문서에 불을 지르는 법도, 어둠의 뿌리가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간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다.    

– 이응준,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中 ‘어둠의 뿌리는 무럭무럭 자라나 하늘로 간다’

 

 

응준님 죄송합니다.

“난 적어도 책 한 권에 인생이 변했노라고 말하는
비열한 인간은 되기 싫었던 것이다.”

이 한 줄이 맘에 들어 거기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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