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13일(로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원도 땅을 밟았던 날.
강원도 행은 거의 드물다던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근 10주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기 위해 102보충대에 들어선 날이다.
그리고 기적인지 당연인지 모를 2004년 10월 25일 전역.(그 때는 분명 기적이라 생각했음)
다시 또 그리고,
2005년 첫 예비군 훈련
입소 전 날 목욕탕에서 목욕재계하고
고이 각잡아 접어 두었던 전투복을 펼쳐 칼각을 잡는다.
누워있던 전투모의 각도 살리고
국방색 팬티와 런닝과 고무링을 확인한다.
전투화는 물광을 내긴 시간이 촉박해 바르는 순간 광택제를 써서 닦아 둔다.
입소 하는 날
어제 챙겨 두었던 국방부 오리지널 보급품 내의부터 전투복까지 착용
육군훈련소 초도보급품인 국방색 혁대와 버클, 전투복 바지 뒷주머니엔 손수건 오른쪽엔 휴지 8칸, 목에는 군번 줄을 걸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 지루해… 군대 이야기도 아니고 예비군 1년차 이야기 묘사가 이렇게 길구나…
나를 모르는 예비군 동지들은 이 무슨 또라이냐 싶겠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 이 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 하겠지.
그렇게 예비군 훈련도 한해 두해가 지나가고 이제 6년차.
사격 훈련이 있는 향토방위 기본훈련은 이제 끝이다.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두 번 다시 소총을 들 일 없을 것.
6년차 예비군은 이제 야비군이 되었다.(야비군은 현역병이 군기빠진 예비군을 가리키는 부러움이 담긴 언어유희였다)
야전상의 왼쪽에는 심심함을 달래 줄 MP3, 오른쪽에는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막기 위한 휴대폰
왼쪽 건빵주머니에는 중앙일보, 오른쪽에는 중앙일보 경제섹션(논조와 관계없이 크기가 작아 주머니에 잘 들어간다는 이유로 간택되었음)
뻐덩한 전투화로 부터 내 뒷꿈치를 보호해 줄 적당한 길이의 사제 양말.
이것이 6년 차의(그나마 양호한) 복장.
일 년에 한 번 모여 총 쏘는 훈련이 전시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직장이며 학교 일로 바쁜 동네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일일 만남을 허용한다는 것 외에 어떤 효용이 있을까?
예비군 훈련이란 제도에 밥그릇이 걸린 현역 및 예비군 간부들과 급식 수송 행정 등에 관련된 업체.
이들을 위해 경로의존적으로 운행되는 제도는 아닐까.
군번줄이 걸리던 목에 mp3 이어폰이 걸린 것 처럼.
초심이 변해 버린 예비군 6년차의 마지막 훈련일지.
내가 지키는 것은 조국인가, 누군가의 밥그릇인가?
승태, 정재, 상희 세 명이서 한 컴퓨터 놓고 차례로 댓글을 달아 주었구나……
2005년 신방인의 밤이라니… 왜 이리 까마득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