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서른 <strong>잔치는 끝났다</strong>책 제목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저자 : 최영미
정가 : 7000원 (할인가 : 5460원)
출판사 : 창비(창작과비평사)
출간일 : 1994. 03. 01

“아니, 이 책을 아는 사람이 이 클래스에 한 명도 없단 말이야?”

‘인간커뮤니케이션’ 수업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교수님이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아는 학생이 있냐고 물었고 학생들의 반응은 정말 잔치 끝난 집 안방처럼 황량했습니다.

약간 뒤쪽에 있던 제가 손을 대수롭지 않게 슥~ 올렸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저를 보고 교수님이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는겁니다.

“아! 이 클래스에 최영미의 그 시집이 세상에 존재한단 걸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네. 자네는 내가 학기말 점수에 반영할 게!”

반을 항상 클래스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은, 당연히 제 성적을 올려주는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저도 그런 시집이 있다는 것만 알았고 읽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80명 남짓한 학생 중 서너명은 이미 시집을 읽어보기도 했을 테지만 이런 질문에 손 드는게 머쓱했을 뿐이었겠죠.

그네들보다 더 머쓱해진 저는 얼마 후 학교 도서관에서 이 시집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벌써 몇년이나 더 지난 후, 그 날 수업에서 배우던 인간 커뮤니케이션이 여전히 어려운 요즘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다시 빌려 읽었습니다.

정말 잔치가 끝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서른 잔치상이 코 앞에 다가온 요즘.

평론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순전히 제 개인 취향과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로 독후감을 씁니다.

그래도 타이틀 곡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첨부해야겠지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 보다도 운동가를

술 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허무하다 그치?) 

어릴 적, 끝없이, 계속되는 동사의 수를 세다 잠든 적이 있다

– 어떤 족보

누가 누구를 낳고 그 누가 누구를 낳았는데…

정말 중요한 건 그러다 동정녀가 누구의 아이를 낳았다더라.

으잉? 동정녀라면서 무슨 누구의 후손이란 말이에요?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 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 갈까요? 

그는 물어볼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끓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아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꺽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데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주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는 곁에서 깜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푼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 퓨- 터할 수만 있다면!

– Personal Computer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

컴퓨터와 씹을 진하게 표시한 건 책 원문의 인쇄효과를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맑시즘이 있기 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 자본론

아유 좀 입에 착착 감기는 단어 없을까요…

‘인문학적 통찰력’…… 이딴 식으로 밖에 이 시에 대한 감탄을 표현 못 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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