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만난 12사단 전우들

바람따라 찾아왔다 찾아왔다

태양처럼 살아간다 살아간다

무서울 게 하나 없는 하나 없는

지상의 호랑이다 하!


불같이 타오르는 가슴을 안고

멋대로 마음대로 살아가지만

인정과 의리에 목숨을 건다

내일이다, 청춘이다 중화기 중대다!

– 37연대 2대대 8중대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아무리 생각해도 가사의 호응이 이상한 부분도 있지만 피끓던 시절에 뱃심과 악으로 부르던 노래.


어제 6년 만에 군대 전우들을 만났습니다.

소대 회식 때 술 먹고 주사 부리길래 내가 프로레슬링 기술(F-5)로 던져버렸던 털범기는 ‘용팔이’라 부르면 발끈하는 용산 컴퓨터상가 (바지)사장이 됐고

이등병 때 질문 많이 한다고 갈굼 당하던 임재는 고려대 편입에 성공하자 아버지가 아우디를 사 줬지만 연비가 리터당 5킬로라서 정작 별로 못 끌고 다닌다 그러고,

입대할 때도 단편영화 감독이던 낌기는 모교 대학원생 상대로 영화를 가르치면서 메이저급 영화판에 뛰어들 채비를 하더군요. 아, 담배를 끊기 위해 12만원짜리 전자담배를 샀는데… 이제는 전자담배맛에 빠져서 그걸 못 끊겠더랍니다.

나 말년 휴가 전 한 며칠 얼굴 봤던 마지막 막내 병수는… 제기랄! 시월에 벌써 결혼 한답니다.

병수보다 4개월 후임인 용현이는 반도체 연구원 일 하고요.

이 자리에 나오지는 않았지만(혹은 그래서 더욱 심하게) 우리 입방아에 오르내린 애들이 한 둘이 아니지요.

어깨에 악할 악惡 자를 새기려다가 아파서 버금 아亞 까지만 새겼다던 상진이는 얼마 전 타투 가계를 차렸대고요.

청주에서 가장 큰 나이트 차리는 게 목표라던, 그래서 상진이랑 복고댄스 배틀도 곧잘 벌여서 웃음을 주던 꾹성은 요즘도 그쪽 세계에 있나 봅니다.

처녀막이 눈에 보이느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던 용일이(자기가 직접 봤다고 주장)와 낌신(절대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없다고 주장)은 요즘 무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내무실 책장에 있던 소설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다방 여자들이 흐르고 흘러 도착하는 막장이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다’

어찌 기가 막히게 그런 소설책이 우리 내무실에 꽂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20대 초반 우리들이 모여 꼬박 2년쯤 구르고 어르고 했던 곳이 바로 서화리입니다.

6년 전 그곳은… 우리에게 어떤 곳이었을까요?

광부는 광산의 막장에 다다라서야 석탄을 캘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서화리가 막장이었다면, 각자는 무엇을 캐고 있었을까요?

어제는 6년쯤 전에 캐던 것들을 얼추 조금씩 열어보는 자리 아니였을까요.


군 입대를 앞둔 대학 후배들에게 짤막하게 던지던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일생에 두 번은 싫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한 번은 가겠다”



“6년 만에 만난 12사단 전우들”에 대한 2개의 생각

    1. 응, 내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 강권한다면 그것도 폭력. 하지만 현실은 우리 둘 다 예비군~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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