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의 편지] 4. 원래라는 이름의 굴레 2009-02-14

신해철이 일간지 인터뷰에서 ‘날 진보라 부를때 좌절한다’고 했는데,
저는 후배들이 절 ‘이상주의자’라 부를 때 좌절합니다.

신해철 자신은 그냥 ‘원칙론자’인데,
개념 상으론 보수라 칭하는게 더 어울리는 자신을 진보라 부르는 사회에 절망한다는 거죠.

저도 이와 비슷한 두 가지 이유로 후배들의 이상주의자 명명에 좌절합니다.

첫째, 제가 그리는 사회가 후배들에겐 실현 불가능한 공상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전 맑스 아저씨처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 하자는 사람도 아니고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 폭력 전무한 사회 실현’을 외치지도 않거든요.

개인의 문제보다 구조의 문제를 먼저 말하고, 경쟁보다 복지나 완충장치를 먼저 꺼내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후배들에겐 너무 먼 이야기로 들리는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한일 감정 같은 거리감을 어찌 좁혀야 할지

둘째, 이러면 진짜 이상주의자에게 미안하거든요.

제가 이상주의자라면 세상엔 극이상주의, 초초초 이상주의자로 명명해야 할 사람이 대거 등장할 겁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전 마지노선으로 존재해야 해요.

‘세상은 원래…’ 라는 후배들에게

‘이상주의자’가 가드 불능 필살기라면 ‘원래’는 무한반복 필살기입니다.

누군가 ‘이.상.주.의.자’란 5글자로 규정하면 해명을 위해 전 500자쯤 떠들어야 하거든요.

‘원래’라는 만능 키워드는 한 번 발동되면 무한회귀로 이어져 세상 만사의 근원적 답변이 돼 버립니다.

‘인생 첫째 가치는 돈이 아니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이윤추구가 아니다’ 등의 제 주장에 대처하는 몇몇 후배의 반응은 아래와 같습니다.

“선배, 세상이 원래 그래요”
“네, 뭐 선배 같은 사람도 있어야…
“선배가 아직 세상을 모르셔서”


억울해!

세상물정이란게 인생의 쓰달시매(쓰고달고시고매운) 한 일을 고루 맛볼때 알게되는 거라면,
자기 땀과 맞바꾼 밥을 먹어볼 때 데구르르 굴러오는 거라 한다면 상당히 억울합니다.

‘땀 흘려 얻은 밥’를 낱말 그대로 해석하면 누구 못지 않게 할 말이 많거든요.

놀이동산 장난감 가판에서 폭설로 무너진 비닐하우스 재건까지 20살 이후로 해 본 일들이 줄 잡아 15개쯤 떠오릅니다.

누구는 막장 인생들의 종착역이라 하고, 혹은 좀 더 쳐줘서 하류인생의 전환점이라 혹평하는 건설현장 일이라면 누구보다 오래 했을 겁니다.

탈진을 막기위해 정제된 나트륨 알약을 먹고 들어가는 유리 용광로 작업.

용광로가 꺼지면 40도 켜지면 90도를 넘는 공장에서 작업을 마치면 검은 작업복에 소금기로 하얀 지도가 그려지곤 했죠.

학기중엔 책을 넘기고 펜을 굴리던 손으로 방학땐 철골을 올리고 드릴을 굴렸으니,
제게 밥 한끼 커피 한 모금이라도 대접받은 이는 제 땀의 빚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곳 현장에서 세상물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난파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요.

홍수로 재고가 모두 물에 젖은 제지공장 사장,
역시 홍수로 차량이 모두 침몰된 운전학원 사장,
주식투자로 떵떵거리며 살다 억대 빚을 지고 도망다니던 형,
허리를 다친 특전사 출신 형,
고아원 선후배들로 이뤄진 고속도로 조경 팀……


분해!

유치하게 세상물정에 그리 까막눈 아니라고 주절주절 늘어 놔 보지만,

당신들에게 ‘원래’를 가르쳐 준 사람은, 아마 나보다 연륜있고 땀도 더 많이 흘렸을테죠.

무엇보다 저보다 먼저 당신을 만나 냉큼 ‘원래’라는 굴레를 씌웠으니 그저 분할 뿐입니다.

동해의 모래사장, 서해의 진흙뻘을 쏘다닐 새도 안 주고 원래라는 말뚝이 허하는 범위 안에서만 서성이도록.


이상주의자 선언

당신과 내게 주어진 ‘원래’라는 이름의 ‘굴레’를 부수기 위해 내게 좌절을 주던 ‘이상주의자’란 말을 집어들기로 합니다.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다윗이 꺼내 든 것이 큰 칼이 아니라 조그만 차돌이었듯,
거대한 누가 만든 굴래를 부수기 위해 모난 ‘이상주의자’란 돌을 품에 넣기로 합니다.

하지만, 제가 품기로 한 이상주의는 날카로운 현실의 작두 위를 걷는 긴장된 걸음걸음 입니다.

제가 취한 이상주의의 반대말은 현실주의가 아니라 패배주의 입니다.

작두를 통과할 배짱이 없어 말뚝에 매여 낮잠 자는 패배주의 말입니다.


골리앗도 다윗의 차돌 한 방에 무너졌고,
거대한 댐도 조그만 구멍때문에 허물어집니다.

“원래는 왜 원래인데?”
라는 이상주의자 선배의 세상물정 모르는 돌팔매질이 당신 굴레를 ‘딱’하고 맞힐, 그 순간 오겠지요!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 콩도르세 (1743-1794, 프랑스 철학자)

제 공부가 부족해 아직 위의 말을 비판하고 개선할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박준희 금일이 발렌타인 데이인데,
초콜릿은 커녕 설탕물 한 모금 얻어먹지 못한 작금의 현실에 대한 분노 따위는 글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2009-02-14
22:59:43 

최태양 생활과 경제강의를 형이랑 같이 들을 때 였죠…. 첫수업듣고 유시민씨에 대한 칭찬과 감탄을 늘어놓는저에게 형은 “우리가 할일은 이 강의를 우리식 나름의 비판적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보아야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뭐 제가 방금떠오른 형의 말과 이글과는 맥락이 조금 먼가요? 저는 오늘 여자친구에게 초콜렛을 받아서 너무 달게 먹었답니다 형 ㅋㅋㅋㅋㅋ 2009-02-14
23:20:23 

정진욱 내가 보는 박준희는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소피스트!!!”

괴변론자란 말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

2009-02-15
02:16:14 

심홍섭 역시 형님은 멋지십니다.

저도 ‘원래~’

이런말 상당히 안 좋아합니다.

인류가 태어나고 사회를 형성하면서 그 제도도 참 많이 변화해왔지요.

거의!! 고대의 모든 사회는 계급사회를 형성했었고

수천년 동안 ‘계급’이 존재했었구요.

(뭐, 초기에 원시사회는 상당히 평등했었다고 하지만;;)

‘원래’라는 말이 있었다면 아직까지 우린 계급사회에서 살고 있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형님같은 분들이 없으셨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ㅎㅎㅎ

하지만, 지금도 ‘돈’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 하나의 계급을 만들고 있지요.

(계급이라는 단어 선택에서 조금 ㅎㄷㄷ 하군요)

아, 어쨌거나

저는 형님 편이에요.

‘원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니깐요.

그렇게 세상은 변해왔구요.

(제가 역사교양을 쌓고 판단해봤을때 ㅎㅎ)


2009-02-15
02:45:27 

심홍섭 인간은 너무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라고 생각 될 만큼;;;

사실, 모든것이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오는 갈등에서 비롯되지 않습니까.

개인에서든 집단에서든…;;

모든것을 포용하고 노예해방에 앞장섰던 링컨같은 대인배가 또 나타났으면 하는군요ㅜㅜ


뭐, 제가 직접행동하지 않고 누군가 이렇게 나타나줬으면 한다는 저 또한…

이기적인 인간이네요. ㅡ_ㅡ

2009-02-15
02:52:41 

박준희 – 최태양 기자
“우리가 할일은 ……………. 해석해보아야한다”
는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어색한 비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해석하는 것이다” 로 고치는게 낫겠지.
네가 초콜릿을 달게 섭취한 사건에 대한 시샘은 여기에 일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냥 조언이다 조언 응!

– 정진욱
욱아, 도서관 4층에 참한 아가씨가 있는데 가서 네가 한 그 말 좀 전해줄래?

– 심홍섭
엊그제가 링컨 탄생 200주년 기념일이었지.
근데 링컨이 한 없이 대인배였을까? (요즘 우상파괴에 너무 희열을 느껴서 이렇게 삐딱해졌다)
재밌게도 진화론을 쓴 다윈도 링컨이랑 생년월일이 같거든.
내가 이렇게 어설픈 이상주의자 선배로 졸업하면 너는 좀 더 똑 부러지는 선배가 되고, 또 네 후배는…… 이런게 진화아니겠어?
하지만 링컨과 다윈을 생각하면 혜민이가 떠오르는건 왜 일까?

2009-02-15
14:34:44 

최태양 형 ㅋㅋㅋㅋㅋㅋㅋ 너무하시는데요… 구어체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초콜렛…. 아 방금도 하나먹었습니다… 냠냠 2009-02-15
16:25:34 

심홍섭 음냐;;; 분명히 형님의 그런 반박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 했습니다만 ㅋㅋ

미국 남북전쟁 당시도 표면이 노예해방이었지 사실은…

뭐, 다 아시다시피 그당시의 북부의 공업과 남부의 농업 경제라는 이해관계에서 이해해야 되니깐요.

역시나 결론은 ‘이기심’ 이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링컨은 보통사람과 조금 다른 대인배였지 않나;; ^^;;


그리고…

그렇게 신방과 사람들이 진화 한다면 멋지겠지요 ㅋ

하지만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루어지는 건데

음냐;; 대신 저희는 환경에 적응, 즉 현실에 타혐(;;)은 되도록 자제하고 발전적으로 진화해야겠지요.

2009-02-15
23:28:28 

박준희 홍섭아,
글의 주제가 ‘의심’ 이다보니 링컨도 도마위에 올려놓고 슬쩍 의심해봤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링컨이 노예해방 시킨 이유가 남북부의 경제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했던게 기억나는데, 책을 반납해서 당최 세부내용을 못 찾겠다.

성역 없이 ‘의심’ 한다는 면에서 크리스토퍼 히친스(허친스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는 정말 대인배!
그의 수식어 중 하나가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마더 테레사 비판’을 읽고 얼마나 흥분되던지!!
우리 모두 ‘의심’ 기능을 진화시키자~

2009-02-17
17:01:55 

손일수 5분의 감동! <EBS 지식채널e>
[두 얼굴의 대통령 _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링컨이야기]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지식’은 절대진리가 아닌 끊임 없는 앎의 과정 속에서 뒤바뀌고 순환하는 ‘사실’의 파편에 불과한 것은 아닐런지요?

버락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링컨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모습은 감동보다는 씁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진실’을 규정짓는다는 것은 무모하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금의 ‘지식’을 ‘진실’을 향한 앎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금 마음을 잡고… 도서관으로 향하게 합니다.. ㅠㅠ

네이버 블로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한 번 보세요 ^^

# <미국의 우상 – 헬렌 켈러의 진실>편도 준희형이 말한 ‘의심’ 기능 진화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아직’이 아닌 ‘여전히’ 별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끄적여봅니다 ~

2009-02-17
20:17:48 

심홍섭 오! 그런가요? ㅎ

‘신은 위대하지 않다’ 라는 거 한번 읽어 보고 참고해보겠습니다^^

(역시 형님은 능력자…ㅎㅎ 많은 것을 알고계시는 ㅋ)

네, ‘의심’ 이라는 거 비판적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거죠?

음…

순진하게 모든 지식을 그냥 받아 들이는 것은 대학생으로서의 자세가 아니겠죠 ㅎ

조금더 ‘의심’하는 자세를 배우겠습니다!


아, 일수가 말한 ‘헬렌켈러의 진실’편도 사회문제의 이해 들으면서 봤는데 정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ㅎㅎㅎ

2009-02-18
04:01:31 

최태양 휴… 긴 장문을 적었다가 지웠습니다. ㅠㅠ.

“의심은 사회를 한단계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왜 갈등을 통해 한 사회는 발전한다고 배웠지 않았나요? 갈등또한

의심으로부터 생기고….. 비판적 시각이란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

2009-02-18
05: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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