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리는 글에는 주로 달달한 소리보다 씁쓸한 소리들이 주를 이룰 것입니다.
그 씁쓸한 이야기는 특정 외부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선장의 자아 비판에 가깝습니다.
또한 러브크루저의 남은 항해는 물론이지만 그보다는 신방의 25층, 26층을 쌓아 가는 설계도의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갑니다.
자, 이번에는 축제의 꽃이 되어버린 주막입니다.
주막이 왜 이리 성행하게 되었을까요?
85학번 선배님이기도 한 이강형 교수님의 말을 빌자면,
주막은 군사 정권 시절 정부에서 마련한 우민화 정책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정부로선 대학생이 한 자리에 모이면 꼭 데모니 시위니 해대는데 축제라는 큰 행사는 말할 것 없는 경계 대상이었겠지요.
이 행사에서 대학생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방법이 없을까 싶었는데, 주막이 적당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당시 축제 때 주막을 한다고 하면 동사무소에서 지원도 나오고 테이블도 빌려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합니다.
독재 정권이 국민을 우민화시키기 위해 쓴다는 3S 정책(Screen, Sex, Sport)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지요.
주막의 역사는 짤막하게 이 정도로만 해두겠습니다. 이런 시절이 있었기에 주막을 없애야 한다! 라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니까요. (극단적으로 가는 오해가 생길까봐 덧붙여요~)
또한 이강형 선배님의 80년대 주막 이야기 외에 또 다른 역사나 형태가 있다면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자, 그럼 현재의 주막, 그리고 앞으로의 주막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동제 기간을 통보받고 저는 ‘주막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가 아닌
‘신방만이 할 수 있는 축제 프로그램이 뭐가 있나‘
에서 시작했습니다.
제로 베이스부터 기획해서 주막 역시 선택 할 수도 버릴 수도 있는 카드로 여기고 여러 대안을 물색했고 몇 번의 항로 회의와 새내기 대표를 만나면서 결국은 주막을 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자, 여기서 저의 자아 비판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두었거나 항로회의에서 나왔던 몇 가지 대안들이 있지만 주막이란 카드를 완전히 버렸을 때의 리스크가 컸습니다.
자신 있게 주막을 버리고 취할 대체 카드의 부재도 컸습니다.
절충안으로 새내기들의 아이디어를 주막 안에 녹여보기로 했습니다.
주막에 보도사진 학회의 흑백 사진이 걸리고 엠프와 MR을 준비해서 신방인들의 노래로 라이브 카페 분위기를 내는 등 상당히 내실 있는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이틀간 쉴 새 없이 굽고 끓이고 치우고 나르고 했을 새내기들에게 주막이 어떤 의미였을지 규정짓는 건 각자의 몫이겠지요.
저는 선장으로서 주막의 현 주소를 묻고 싶습니다.
지금 신방의 주막은 어디에 와 있습니까? 어디에 위치합니까?
주막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씁쓸한 주막의 역사 이야기를 접어놓고 본다면
[새내기들이 온전히 기획 집행하면서 주인 되는 행사
교수님, 재학생은 물론이고 졸업 선배들까지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자리]
이것이 주막의 주된 목적일 것입니다.
이것 역시 일장 일단!
현재 주막이 가지는 한계점이 무엇입니까?
1. 새내기들이 주막의 주인이 되는 대신에 대동제의 주인은 되지 못합니다.
보통 새내기 땐 대동제 기억이라곤 주막 밖에 없다고 하지요.
새내기에게 전적으로 주막을 맡기는 과는 사회대에는 우리 과 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어느 쪽이 더 좋다 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새내기 시절의 경험이 대학 4년의 경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봤을 때 좀 다른 세계를 보여 주고 싶은 게 선장의 욕심이었고 그러지 못해 아우~ 못내 아쉬웠습니다.
2. 좁은 천막에서도 쉽지 않은 신방의 아우름
대동제는 크게 같이 어우러진다는 의미인데 주막 천막 안에서 어우러지는 범위엔 한계가 있습니다.
교수님, 졸업 선배님과 어우러지는 것도 주막의 주요 목적이지만 후에 교수님들께 주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조차도 잘 되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교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막에서 술을 드시면서 ‘우리학과’ 주막에 온 게 아니라 그냥 ‘술 파는 집‘ 에 온 것 같았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이 오셨을 때 간단한 인사 말고 가까이 다가섰던 신방인이 몇이나 될까요?
졸업 선배님들 중에서도 비교적 저학번은 안면이 익은 재학생과 쉽게 어울릴 수 있지만 80년대 선배님들은 정말 단촐한 선술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셨을 겁니다.
좋은 기회를 좋은 자리로 만들어 내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링크맨을 자처하면서 소임을 다 못한 저에게 있습니다.
우리 재학생들은 새내기에게 주막이 무엇이라고 알려 주었나요?
아니, 그보다 우리 재학생에게 주막은 어떤 자리인가요?
동기 모임이나 어떤 모임의 뒷풀이 보다 넓은 개념은 아닙니까?
3. 엎어 치나 메치나, 태생적인 틀의 한계
법대 앞 학생 주차장이라는 정해진 장소
얼추 저녁 6시 부터라는 정해진 시간
매년 안주와 내부 프로그램이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그 큰 틀을 벗어나기는 힘듭니다.
쉽게 말해 신방과의 특색을 집어 넣을 수 있는가?
100개가 넘는 주막 등불의 불야성 사이에서 신방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가?
기획 단계엔 지역 주민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영상 촬영 강좌, 작품 전시 상영 등의 행사도 생각 했습니다.
다른 학교의 언론 학도를 불러서 우리 성과물도 보여주고 실습하는 것도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大同제, 말 그대로 크게 한 번 어울려 봤으면 했습니다.
그 외에도 상당히 많은 가안 들과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주막이라는 카드를 버리기가 힘들었고 그 카드를 취하면서 병행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주막이라는 포맷이 가지고 있는 태생의 한계, 그걸 뛰어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과론 적으로, 욕심이 나지만 배팅 할 수는 없었던 선장의 한계였습니다.
그럼, 우리의 주막에 달 번지수는
또 어떤 식으로 글이 오해 될 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사랑, 우리 새내기들 주막은 최소한 단대, 더 넓게 보자면 간호대 미대 인문대 등 제가 돌아 본 어느 과보다 음식과 프로그램 면에서 나았습니다.
(아참! 인문대 한문학과엔 숯불 구이용 드럼통과 업소용 냉장고를 가져다 놓고 바베큐와 꼬지를 굽는 무서운 애들이 있더군요. 심지어 북성로 돼지갈비와 우동까지…)
여러 다른 과 회장들을 우리 주막에 데려왔었는데 앉자마자 메뉴의 다양함과 메뉴판의 아기자기함에 놀라고 맛에 또 한 번 놀라더군요.
사회대 다른 과 회장들은 우리 과에 가 보고 싶어도 자리가 안 나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한 해의 주막을 결산/ 평가해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주막이라는 포맷이 가지는 한계점을 말했고, 그 한계점을 알면서도 쉬이 그것을 넘을 수 없다는 것에 부끄러워 했습니다.
우리 주막이 현재 어떤 모습이며,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아니, 좀 더 크게 말해서 주막이 아닌 신방의 대동제가 어찌 해야 하는가를 신방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밑줄에 별표 셋!
러브크루저가 후원하고 내 첫사랑 새내기가 채워나갔던 주막은 끝났습니다.
이제 스물 다섯, 여섯의 신방은 어떻게 크게 어우러질 겁니까?
신방과 주막에 달 새 주소는 몇 번지일지, 생각해 봅시다.
한진주 | 새내기들이 전적으로 주관하기 때문에 선뜻 주막이라는 포맷을 다른 것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죠. 주막은 신방인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매력이 있거든요..ㅎ 그렇지만 새내기 과대 부과대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꼽을 수 있는 게 주막이기도 하구요. (저는 그랬습니다 ^^;) 내년에 새내기들이 선배가 되어있을 07학번에게 주막에 대해 질문한다면 ‘주막’의 장점도 좋지만 꼭 주막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지금의 주막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신선함을 원하는 선장님의 바람도 이해가 갑니다ㅋ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자는 게 이 글의 취지 맞죠? |
2007-08-09 00: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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