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년, 전남대 신방과 교류학생 혜리랑 러브하지 않은 상태에서 러브로드를 걷고 있을 땝니다.
준희 : 이 땅에서 들리는 민중의 소리~ 바람 따라 자유가
혜리 : 뚜벅뚜벅 걸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준희 : ㅇ.ㅇ? 오잉? 네가 이 노랠 어떻게?
혜리 : *.*? 오빠는요?
…
..
.
짜잔~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과가라고 알고 있는 노래를 전남대 신방과도 부르는 겁니다.
지리산을 사이에 두고 차로 4시간이 걸리는 서쪽 빛고을에서요!
이게 악보를 통해 전해지는게 아니라 구전되다 보니 음은 미묘하게 다르더군요.
80년대 선배님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80년대까지는 전국의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고 90년대에는 대구/경북 언론학도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2000년대 들어오며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들었고요.
유추해 보건데 지금 부르는 과가는 80년대 전국 언론학도들이 모여서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자, 시간은 흘러 07년도.
러브크루저의 선장은 새로운 과가 만들기에 도전합니다.
당시 새내기였던 일광이가 작곡하고 신방인들이 작사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려 했죠.
허나 시도도 못하고 좌초.
가장 큰 이유는 선장의 추진의지 상실이었습니다만, 그 이유와 당시 배경은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당시, 기존 과가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2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째가 신방과의 ‘전통성’, 두 번째가 언론학과의 ‘정체성’ 이었죠.
여기서 저는 좀 삐딱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경북대’ 신방과만의 전통을 계승하려면 초대 84학번 선배들이 만들었던 과가를 부르는 것이 거기에 더 부합할 겁니다.
‘전통’이라면 그 전통이 전해져 오는 길과 역사를 알아야 할 텐데 지금 과가는 어디서 유래됐는지도 모르는 큰 공백이 있거든요.
정체성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합니다.
80년대 군부독재 상황의 신방과와 지금은 다릅니다.
80년대는 언론사가 파업하면 신방과 학생들이 연대휴교하며 같이 투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MBC/YTN이 파업할 때 동맹 휴교를 하겠다는 신방과가 전국 대학 중 한 곳이라도 있었습니까?
박정순 교수님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과가의 가사를 보고
“현 상황과는 맞지 않다. 지금은 도리어 언론의 지나친 자유를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니냐”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까지 수긍하느냐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지금의 신방과가 즐겨 부르기에는 부담스런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과가는 ‘불리지 않는 노래’ 가 되었다는 게 가장 강력한 방증입니다.
다시 정반합의 귀결,
1. 비록 경북대 신방과만의 노래가 아니며, 경북대 신방과가 처음으로 정했던 노래는 아니지만 이미 십 수년 동안 신방과 사람들에게 불려지며 만들어진 전통은 분명 존재합니다.
2. “혀가 잘리우고 귀가 막혀도 몸뚱이로 말하는” 일들은 분명 언론학도의 정체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지금 있는 과가를 폐기하고 새로운 노래로 대체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노래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가가 ‘전우’밖에 없나요?
‘전선을 간다’도 있고 ‘진군가’도 있습니다.
그 경직된 군대 안에도 다양한 상황에 맞춰 부를 수 있게 다양한 군가가 존재합니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자, 지금 모습을 반영해서 함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만들어보자.
여기까진 일단 학생회에서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통을 넘어서 항해하고 있던 러브크루저
거기에 새로운 전통/정체성이란 짐을 더 얹기에는 무거워, 방치하다 귀항하며 폐기된 이야기가 됐지요.
아! 의욕을 보여줬던 일광이에게 가장 미안하다는 말을 이 지면을 빌려 전합니다.
이건 ‘불리지 않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술 먹고 학교 곳곳에서 미친 듯 불러댔다는 01학번 선배부터
일 년에 몇 번 안 불러 가사가 까마득할 내 첫사랑 07학번과 그 후배들까지
한 번 생각해 보길
이젠 ‘불리는 노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거기 들어갈 새로운 ‘전통’과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
무책임한 선장 때문에 당신들 몫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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