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 새내기에게- 서글픔 2그램 함유된 선장의 편지 2007-09-15

2학기 시작하고도 세 번째 맞는 토요일이네요.

잘 지내나요, 새내기라는 이름의 당신

매달 셋째주 토요일은 혁신토익이 치러지는 날이죠.

먼저, 오늘 시험 진행에 있어서 리스닝 테스트 준비 미흡으로 시작시간이 연기된 점, 191~195번 문제지 인쇄 누락으로 불편을 끼친 점 죄송합니다.

120퍼센트 이상을 준비해야 겨우 80퍼센트 정도의 만족을 기할 수 있을 터인데 네 번째 진행인데도 아직 미숙한 점이 많았습니다.


오늘 시험 신청 인원은 고시원 7명, 학과 25명

이강형 교수님과의 약속(그것이 어느 정도 일방적 통보 식의 약속이었다 해도)으로 스물 두명의 새내기가 신청을 했더군요.

허나 시험을 치른 새내기는 여덞 명……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서운한 게 아니라, 서글펐습니다.

오늘 못 온 새내기들도 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요.

허나 오늘 온 새내기들은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오늘 불참한 새내기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심 했습니다.

만약 시험을 준비하는 저나 교수님, 조교 누나가 사설 업체라면 당신들이 안 올수록 좋을 겁니다.

이미 돈은 받아놨겠다 사람 적으면 관리가 쉬우니 속 편하겠지요.

교수님은 토요일 학교 나온다고 특별 수당  안 나올 뿐더러 애들이랑 토익문제집 붙들고 씨름하려고 학교 나오는 교수는 어디 없습니다.

과사 누나도 당신들을 위해서 20부 넘는 문제지 복사하는 수고를 합니다.

전 혹시라도 당신들이 일찍 왔을 때 문이 잠겨 발길 돌릴까봐 9시에 101호 문을 열어놓고 기다렸지요.

난 당신들 토익 성적이 400 아니라 300이라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토익이라는 시험이 당신들 평가하는 대단한 잣대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학과 토익에 응시자가 너무 적은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지만 흥미 없는 시험에 억지로 앉혀 놓는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것도 서운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이 아닙니까.

당신의 수능점수 토익점수 따위 저에겐 큰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당신이 우리와의 약속을 가벼이 여긴다면, 그렇다면 서글픈 일이지요.

오늘 시험에 안 나온 사람들이 ‘시험응시’를 믿음으로 하는‘약속’이 아닌, 편의에 따라 파기 가능한 ‘거래’로 생각했을까 그게 서글픈 겁니다.

물론 새내기 개개인으로 봤을 땐 단순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 못 한 것인데 그것들이 겹쳐서 이렇게나 휑한 자리를 만든 것이겠지요.


교수님께 결과 보고를 하는 전 얼마나 머쓱했겠으며 교수님은 또 어땠을까요?


대학생 후배에게 자유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할 순 없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의 안내는 선배와 교수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이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관물대 뒤편에 꺼멓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사정’이지만, 상대에게는 ‘변명’ 일 수 있다는 것.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는 결국 몸에 좋은 쓴 약일 것입니다.


아직 당신들과 부대끼며 당신들 생각을 나눠 먹기엔 얼마쯤 떨어져 있는게 아닌가란 생각으로 하루를 닫습니다.

내게 시큼한 물약 한 병 건네주는 첫사랑 당신,

선장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한 발자국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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