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황보라와 비할 수 없이 매력적인 신주현 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차저차 이러저러해서 한소리에 실을 기고문을 써 달라네요.
욕심은 났지만 2000자 안에서 하고픈 말을 다 녹여 낼 수 있을까 싶어 망설였지요.
졸업을 앞둔 요즈음. 모든 게 학교에서의 마지막이 됩니다..
마지막 벚꽃, 마지막 방학, 마지막 낙엽… 마지막 기고
그 마지막 지면을 나에게 허락해 준 편집국장의 성은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
머릿속으로 늘 생각했던 주제를 꺼내서 휘휘~저어 보긴 했는데…
역량 부족으로 2000자 안에 이야길 오밀조밀 풀어낼 수가 없더군요.
원래 구상, 초안, 퇴고까지 머릿속으로 수십 번 반복하고
정작 펜을 들고는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모양새인데,
이번 글은 곳곳에서 한계령이며 대관령을 만나 쉬어갔습니다.
사실 각 단락 단락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다른데, 조잡한 글 솜씨로 많은 내용을 실으려다 어설픈 용접으로 붙여놓은 고철덩이가 됐습니다.
이에 리콜을 실시해, 못 다한 이야기를 좀 늘어 놓아볼까 합니다.
아마, 게시판 오른쪽 스크롤 바가 상당히 짧아지지 않을까 예견해 봅니다.
아래는 한소리에 실린 기고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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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빚지고 있습니까?
BMW 1억5,053만원, 토요타 1억3,841만원. 외제차 메이커들의 신차 가격인가?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1,492만원, GM코리아 0원이라는 대목에서 그 추측은 설득력을 잃는다. 위의 수치는 6월자 신문에 난, 외제차 업체들이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 환원한 금액이다. 초라한 사회환원금액에 비해 국내 부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명품 마케팅 비용은 수십 수백억에 이르며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수천억에 달한다. 외제차 업체들은 상류계층이 누리는 고급 기술만 들여왔지, 그 차를 소유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같은 고급문화는 함께 들여오지 않았다. 호화 세단의 뒷자리 진동안마 기능은 들여오면서,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져야 할 나눔의 정신은 옵션으로 빼 버렸다.
문화나 정신은 빼고 기술과 제품만 가지고 오는 것이 차량뿐이랴.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교육을 벤치마킹한다고 야단이다. 몰입을 넘어 무아지경을 바라는 듯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좇아서는 바퀴 달린 값비싼 쇳덩이를 수입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서구 복지국가의 교육제도를 왜 우수하다고 하는가? 이런 나라에서는 국가의 지원으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고등교육까지 마칠 수 있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가 사회에 진출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질까? 이제까지 사회가 나에게 베풀었으니 갚아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싹튼다.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을 사회로부터 진 빚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에 빚진 자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교육철학이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개인과외, 그룹과외, 예체능과외……. 올림픽 종목보다 많은 과외를 섭렵. 소 팔고 집 팔아 등록금마련. 취업 3종이니 5종이니 화장품 선물 세트보다 화려하게 채워진 이력서. 그걸 만드느라 대학 4년을 5년 6년 늘려가며 몸 팔고 혼 팔아 취업. 나를 기준으로 앞과 뒤만 보이는 일직선 세상을 달리니 옆을 돌아볼 새가 없다. 학자금 대출 말고는 빚진 게 없다. 빚졌다고 생각할 틈이 없다. 직선 그래프의 영점 좌표에서 멀어지기 위해 잠을 줄이고 허릴 졸라맸다. 이제 사회로부터 거둘 차례다. 사회로부터 돌려받을 것만 남은 빚쟁이를 만드는 것이 우리네 교육이다.
하지만, 대학생인 당신은 이미 빚진 자다. 삼월의 촉촉한 흙 없이 뿌리 내리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오뉴월의 뙤약볕 없이 영글어가는 과실이 어디 있는가?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 받았고 그로인해 사회 활동의 폭도 넓다. 장학금이나 인턴 등의 직간접적인 혜택도 받는다. 예전보다 대학생이 많아 졌다는 것은 이 사회가 더 많은 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곧 사회에 빚진 자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육은 하늘위로 가지를 뻗는데 집중한 나머지 우리가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과 주변의 고마움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우뚝 솟은 인재만 키우려는 교육이 환원을 모르는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 세대에서 시작하자. 지금 이 곳에서 시작하자. 선배의 밥, 교수의 술, 모두 공짜가 아니다. 내리사랑이란 이름의 빚이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감동받은 사람이 감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빚진 사람이 더 큰 빚을 지울 수 있다. 거름은 풍족한 땅을 만들고, 빚진 자는 풍성한 사회를 만든다. 훗날 더 많이 돌려주기 위해 더 많이 빚지고, 또 후배들에게 빚 지우자. 아름다운 채무는 우리세대의 의무다.
“걱정돼요, 우리가 받은 만큼 새내기들한테 해 줄 수 있을지…”
올해 초에 만났던 2학년 후배의 입에서 싹이 트는 향기를 맡는다.
– 누구보다 큰 빚을 지고 있는 신문방송학과 02학번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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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단락의 자동차 업계 이야기는 ‘기업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후배들 대 여섯 명한테 물었더니 모두 ‘이윤추구, 이윤 극대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럼 제가 말하죠.
‘기업은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이윤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서비스나 재화를 생산하다 보니 나오는 것이다. 기업 이윤이 사회이익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 ’
후배들은 말합니다.
‘그건 책에만 나오는 거잖아요. 선배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셔서…’
제가 다시 말합니다.
‘만약 이윤추구가 첫째가는 존재 이유라면, 멜라민 넣어 파는 회사들이 이윤을 남기는 것도 타당하단 말이냐?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그 앞에는 사회 공동의 이익을 전제로 놓아야 한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내가 어리면 너는 애늙은이얏!’
조직은 개인이 이룰 수 없는 일을 하기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축구팀은 혼자서는 못하는 축구를 하기 위해, 조선소는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LNG 선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기업은 혼자서는 줄 수 없는 사회적 이익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반대급부로 사회의 사랑을 이윤이라는 형태로 받게 되지요.
아!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당연한 거 같은데,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요??
두 번째 단락부터는 교육철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등록금 투쟁하면서 등록금->교육정책->교육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가 봤지요.
흔히들 80 : 20의 사회라고 합니다. 상위 20퍼센트의 인재가 80퍼센트를 먹여 살리고, 상위 20퍼센트 부자가 전체 부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그렇다면 이 80 : 20 사회를 99 : 1의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20이 80을 끌어올려 같이 가는 게 좋을까요?
무한도전이 좀비특집을 한 적이 있죠.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만.
들은바로는, 작가들이 의도한 시나리오는 ‘무한도전팀이 사다리를 타고 건물을 탈출해 아이템을 획득하러 간다’ 였는데,
정작 녹화장에서는 가장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박명수가 사다리를 걷어 차 버려 녹화가 끝나버렸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이 안 되는 것이죠.
먼저 높은 곳에 올라간 20이 나머지 80의 추격을 막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린다면, 그 20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요?
먼저 올라간 20이 80을 끌어 올려주고 뭉친 100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사다리를 놓아가는 과정이 상생을 통한 인류의 진보 아닐까요?
한 명의 인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 합니다.
하지만 만 명의 범인(凡人)이 없다면, 한 명의 인재는 만 명분의 몫을 벌 필요도 벌 수도 없을 겁니다.
우리 교육이 일차원인지, 이차원인지, 혹은 넓고 높은 삼차원으로 가고 있는지 곱씹어 보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 문단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빚진 자’ 라는 개념은 장학금과 결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장학금의 제 1원칙은 ‘공부하고 싶지만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 학과는 장학금 TO 전부를 성적순에 의해 주고 있습니다.
(아, 가끔 근로장학 TO가 내려오기도 하는데 요건 별개로 하겠습니다)
성적순으로 주니 편하죠, 군말 나올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여하는 장학금은 마치 상금과 같은 느낌입니다.
공모전에 열심히 응모해서 상금을 받으면,
‘아!! 내가 공모전 회사와 응모한 다른 친구들에게 빚졌어. 그 사람들 몫을 언젠가 되돌려 줘야지!’
라는 사람은 없지요.
전혀 빚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내려오는 장학금은 여러모로(학과사정, 제도 등) 운용의 폭이 좁은 게 사실입니다.
가장 좋은 건 수혜자가 성장해서 기부자가 되는 선순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겠죠.
이런 식의 장학금이라면,
수혜자는 학자금 대출과 달리 상환에 대한 법적 구속을 받지 않고,
기업 입사 등의 조건 없이 언젠가 다시 상환하면 되므로 짐이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가 다시 돌려줄 거니까, 고맙고 당당한 빚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장학금을 ‘빚’ 이라는 개념을 빌려서 표현하게 된 건, 86학번 한상철 선배님이랑 술자리를 하던 날에서 받은 영감때문입니다.
동문회 일일호프를 앞두고 작전회의를 하던 어느 날, 상철 선배님 said.
‘나는 학교방송국 일을 하면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난 그걸 빚이라 생각하고 지금도 갚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 후에 ‘이명박이 되면 안 돼~~~ 난 이민 간다’ 등을 외치면서 연거푸 잔을 들이키셨기 때문에 선배님은 기억나지 않으실 지도 모릅니다 ^.^…
드디어 마지막 단락에 와서, 우리 학과 이이기!
선배는 후배한테 밥과 술을 사줍시다~ 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
더 길게 쓰면
‘신방과에 빚진 사람을 키워야 한다’
빚을 지우면 언젠가 다시 갚으러 올 겁니다. 자기 빚을 내리사랑이란 이름으로 후배들에게 물려줄 겁니다.
반대로, 학과에서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 학과가 뻔뻔하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나요?
자, 국가의 보조금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부터, 학과의 관심은 조직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부터.
‘박준희 카는 동기’
아직도 동기들 술자리에선 더 없을 아웃사이더였던 제 새내기시절 별명이 안주거리지요.
복협이 없었다면 내 학과 생활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학생회장 해 보라는 농담에 40도 알콜을 섞어 건넨 선배가 없었다면 러브크루저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테지요.
불은 어두운 곳에서 켜고, 문은 벽에다 내죠.
어디가 어둡고 어느 쪽이 벽일까요…
저는 이제 현역으로서 마지막 빚 청산의 기회입니다.
다단계로 치자면 에메랄드에서 다이아몬드로 가는 과정이랄까요?
(참고: 다단계 등급 – 골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블루 다이아몬드…)
러시앤캐시, 리드코프 등을 누르고 최고 사채조직이 되기 위한 초석 쯤?
편집국장 신주현이 제 원고를 받아보고 묻더군요.
‘선배, 글 마지막 말 제가한 거 아녜요?’
(마지막 말 -걱정돼요, 우리가 받은 만큼 새내기들한테 해 줄 수 있을지…)
저는 ‘노 코멘트’ 라고 그랬죠.
말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 말 한 후배가 너만이 아니었단 걸…
* 기고문과 못다한 이야기를 각 단락마다 조합해서 읽어보시면,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개연성을 생각지 마시고 그저 ‘못다한 이야기’ 라는데 의의를 두시길
** 요즘 자기소개서 작성 실력이 부쩍 늘어 내년엔 신춘문예 입상을 노려도 좋을 듯 합니다. 봄이 오기까지는 하얗게 지샐 날들이 많으니 제 홈페이지에 종종 놀러와 주셔요.
하루 방문자수 5에 제가 컴퓨터 바꿔 4번 들어갑니다… ㅡ,.ㅡ…
혹은
심홍섭 | 조회1의 상큼한 댓글이네용.
많이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기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는 아직 멋진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ㅠ 홈피 놀러갈께용.ㅎ |
2008-11-01 17: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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