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허된 소개팅

 

형들이 그랬습니다.

 

“넌 서울 코드야, 스펙트럼이 다양한 사회에서 살아야 해”

 

난 믿었죠.

그래, 난 서울 코드다!

여지껏 연애를 못 하는 것은 코드 문제였어

220V용 제품을 110V 콘센트에 꽂으니 작동할리가 있나!!

 

그리고… 서울생활 1/4분기가 지났습니다.

 

얼마 전 동기가 주선해 주기로 한 소개팅

거의 날짜 잡는 분위기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녀가 교회를 다녀서… 소개팅 상대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면 좋겠단다…

 

맙소사… 2000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예수 아저씨…

아니, 아저씨가 불멸의 존재인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사와요.

듣기 싫어도 공원에서 학교에서 시도 때도 없이 그 사실을 전해 주려는 사람들이 보험설계사 분들보다 더 많이 깔렸어요.

 

그런 당신이 왜 제 봄날 소개팅에 급제동을 거시나요 ㅠ.ㅜ..

 

이 비보를 친구들에게 전하자 요렇게 말하더군요

“그냥 교회 다닌다 그러고 만나지 왜~”

아, 또 그건 아니거든요.

그건 신뢰에 대한 문제예요.

 

‘마치 이 중고차는 한 번도 사고 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팔았다가 나중에 들통나면 ‘어쨌든 사 갔으니 당신이 알아서 하쇼’ 하는 중고차 업자나 마찬가지여요.

용산전자상가의 악덕 판매상 ‘용팔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종교는 하나의 신념입니다.

키나 몸무게를 속이면 속였지 어떻게 가치체계를 속일 수 있을까요.

 

아니, 교회 다닌다고 거짓말 해서 일단 만났다 쳐요.

주변에 교회 다니는 친구도 많고, 초코파이 신자긴 해도 논산에서 세례도 받았고(이날 동시에 2천 명이 주님의 구원을 얻음…), 성경 공부 비슷한 것도 이럭저럭 했습니다.

교회 이야기 나오면 할 말은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 성향상 독실한 신자 연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첫 날이나 오래가도 두 번째 만남에 들통날 겁니다.

 

사랑에는 국적도 없다지만 종교는 달라요.

남녀간 합의가 거의 불가능한 몇 개 요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종교입니다.

그 외에 좌파나 우파 같은 정치적 신념의 차도 있고, 몽골의 초원지대에 뼈를 묻겠다는 남자와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너무 사랑하는 여자처럼 극도의 생활환경 차이도 있을 수 있지요.

 

주위에서 종교차이로 인해 갈등하는 몇몇 커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심정적으론 기독교인을 십분 아니라 백분 이해합니다.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자면 예수 믿어야 구원 받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 받길 원하니까 더욱 교회에 나가게 하고 싶고, 이런 맘은 사랑하는 맘이 커지면 커질수록 강해지는 게 당연하지요.

 

문제는 믿음이란 것은 앎과는 달리 거짓으로 지어 낼 수가 없습니다.

약 2000년 전에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다는 이야기를 알고는 있지만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난 동정녀 잉태를 믿는다”고 남에게 말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종교와 앎의 철학 사이의 간극입니다.

그것은 고스란히 신도와 비신도 연인의 간극이 되곤 합니다.

 

친구라면 그 간극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인이라면 그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종교문제로 소개팅이 어렵게 됐다는 제 넋두리를 들은 침례교인 누나가 제게 말합니다.

“그건 하느님이 너를 원하시는거야~, 먼저 하느님을 맞이하면 다음에 아가씨를 내려 줄 거란다”

맙소사… 누나, 농담처럼 건넨 진담인 듯 여튼 저튼 하여튼 난 또 간극을 느껴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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