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리할 때가 됐다.
연말 결산을 왜 연말에 안 하고 1,2월에 하는지 이상하다 싶지만,
연말이 지나가야 연말을 결산할 수 있으니 당연한 거다.
그렇게 나도 13번의 소개팅을 지나서야 소개팅 결산을 한다.
엑셀로 DB화해서 통계를 내 보진 않았으나(사실 해볼까 싶었지만),
소개팅 상대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을 순수히 내 기억에 의존해 추려보면
생각이 많다,
소신이 강하다,
특이하다,
혹시 혈액형이?
로 집계된다.
그럴 때 마다 ‘지극히 일반적인 소시민적 사고를 하는 평범한 청년’이라고 대꾸했지만,
그래, 이제 인정한다.
나란 사람을 연속적으로 보지 않고 한 두 시간만 때어내 마주하다 보면 현기증이 날 지도 모른다는 거.
소개팅 자리에
상대 전공에 대해 예습해 오거나 (그래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따윌 꺼내거나)
따로 국밥이나 양꼬치 구이 먹으러 가자거나(설혹 그것이 네티즌이 인정한 맛집이라도)
집에 신문 뭐 받아보는지 묻는다거나(그것도 말문을 트는 질문으로)
별로 가볍지 않은 연예계 이야기를 던지고(1박 2일을 싫어하는 이유가 가학성 웃음 유발장치 때문이라는 둥)
뭐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을 수도 있단 걸 인정한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내게 물컵을 집어 던지거나 주선자에게 항의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을 감사하며 항상 여러분의 행복을 바랍니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열 세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당신들과 만났던 하루(더러는 며칠) 동안은 순수하게 최선을 다했어요, 그것만큼은 신용카드 세액공제만큼이나 투명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서너 시간 떼어놓고 보면 감당할 수 없이 불편한 이 청년을!
그렇다면 그녀를 내 연속성의 세계로 초대해야겠지.
내가 원하는 조각과, 나와 맞는 조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연말이 지나고 나서야 연말정산이 가능하듯,
숱한 조각들과 맞춰보다 깨닫는다.
신이 있다면,
소개팅 할 땐 나를 테트리스의 막대기가 되게 해 주소서
그녀의 어떤 공간이든 부담 없이 들어가 앉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