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다 만 신 (수정 보충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도발적인 제목에 붉은 원색 표지까지!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엔 늘 대출중이고 사기에는 만만찮은 가격
결국 만나야 할 책은 만나게 되는 것인지 구가 동생한테서 빌려오면서 2회독을 하게 됐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마더 테레사; 자비를 팔다’ 순으로 읽어나갔고, 반론을 들어보기 위해 기독교 신자들의 책 몇 권도 읽어봤다.

참,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신을 소재로 하긴 했으나 신의존재증명이 주제는 아니라는 거~

한동안 종교 이야기와 신의 증명 논쟁이 너무 재미있어서 난리였지.
만나는 애들마다 만들어진 신을 추천하고, 그게 두꺼워서 어려우면 ‘자비를 팔다’ 는 꼭꼭 읽어보라고 권유했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전에 글로 써서 생각이나 의문들을 정리해 두었어야 했는데 이제사 그 첫걸음을 뗀다.

만들어진 신을 보고 수첩에 적어 놓은 글귀를 가볍게 되새김질 해 보자.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혼자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면 미쳤다 한다
수십 명이서 종말을 이야기하면 사이비단체라 한다
수천명이서 종말을 이야기하면 ‘급격히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신흥종교집단’ 이라는 좀 더 예의바른 명칭이 붙는다
더 나아가 수만에서 수억명이 종말을 이야기하면, 그 종말은 교리(그들에게는 진리)가 되고 단체는 종교가 된다.

게시판 저~ 밑에 쓴 글에도 있지만 ‘사람공부 한다는 사람’이나, 대순진리교, 또 자신들은 절대 이름이 없다는 기독교 단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흔히 사이비 종교로 불리는단체에 대해 난 상당히 열려있는 편이 아닐까.


근데 사이비와 정통 종교의 구분점은 무엇일까?
집이나 재산을 죄다 갖다 바치라 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종교?
아마 이게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말하는 사이비 종교일 것.


허나 이것도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라면 정통종교와 구분이 안 간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신부나 목사를 우리는 생활 불능인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직장생활 안 하고 대순진리교 교리에 따라 일생을 살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한탄한다.


이 차이가 무엇인가?
내 생각엔 기존 종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헤게모니 덕분이다.
젠장, 헤게모니! 이거 다른 말로 바꿔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기독교를 예로 들자.
월화수목금토 다음에 오는 하루는 꼭 쉬어야 하고, 번 돈의 10분의 1은 꼭 어디에 내야 하는 등의 기독교 생활양식은 사회적으로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다.


왜? 그건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기독교인은 으레 그런 생활양식을 가지며, 그런 생활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종교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게 메이저 종교의 권위인 것.


기독교는 왜 그래?
기독교는 원래 그래.
농구화 밑창에는 에어가 달려있어야 해.
왜?
원래 그래, 나이키 신발 못 봤어?
농구화의 정점에 에어조단 시리즈가 있던 시절, 나이키는 농구화의 헤게모니 회사였다.
바로 요런 식

‘경대교’라는 종교를 만들어, 우리의 성지는 경북대 근처 경대교이며 주 3일 쉬고 번 돈의 10분의 1은 PC방에 갖다 바친다 해보자.
딱히 이 사람들이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아도 사이비 종교 소리는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2009년 전에 만들어진 종교가 기독교 아닌 경대교라도 그랬을까?

위의 예는 비종교인들의 관점이고, 종교인이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기준은 좀 다르지 않을까?
바로 자신들의 교리와 얼마나 다른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이건 더욱 답이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종교 교리가 논증이 불가하지 않는가?
내 종교가 절대적이라면 상대종교는 절대, 절대적 위치에 둘 수 없을 것.
사람위에 신이 있지만, 자신들이 믿는 신 위에 다른 종교 신을 위치시킨 조직도를 난 보지 못했다.


기도
지극히 부당하게 한 명의 청원자를 위해서 우주의 법칙들을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는 것
-Ambrose Bierce

만들어진 신에 보면 재밌는 실험이 나온다.
과연 기도의 효험이 실제로 발휘 되는가 실험하기 위해 환자를 세 집단으로 구분해서 기도를 받은 환자와 받지 않은 환자의 회복정도를 측정했지.
결과는 별 차이 없었고 되려 자신이 기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환자들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
자신은 기도를 받고 있으니 몸이 빨리 나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으로 추정된다나?

기도는 간절한 소원 빌기다.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폄하할 작정은 아니지만,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순수하게 이기적이며 모순적인 행동이 바로 기도 아닐까?


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어떤 원하는 모든 것?
그냥 모든 것. 신은 전지전능이라니까!

기도와 천국이라는 마케팅 수단이 없었다면 종교가 메가 히트 상품이 될 수 있었을까?


전지한 신,
미래를 아는 신은 알 수 있을까?
전능함이
미래에 자신의 마음을 바꾸리라는 것을
-카렌 오언스

종교 교리, 성경을 포함한 경전에 나오는 숱한 논리적 모순들
절대적 믿음을 전제로 한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역으로, 그 절대적 믿음이 없으면 절대 그 모순들은 해결되지 않는다.

암흑시대에 종교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안내자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는 눈먼 사람이 최고의 안내자인 것처럼
그는 주변 지리를 앞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낮이 왔을 때 눈먼 노인을 안내인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인리히 하이네, ‘시상과 착상’

논산 육군훈련소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었다.
훈련병으로선 거위의 간 푸아그라보다 극진한 음식인, 초코파이 두 개, 레몬맛 펩시, 소보루 빵 두 개를 주님의 은총으로 알고 냅다 삼켜버렸었지.


기독교인 친구를 만날 일도 많았다.
신학대학원 준비하는 성치형도 있고, 졸업반이면서 몇 년째 졸업 못 하고 있는 신학대학원 형도 현장일 하면서 만났고.
그들과 이야기 하면서 한 번도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 다툴 일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완충지대가 운동장 만큼 넓었다.

내일이라도 내 가정과 의문들이 한 번에 부서져 나간다면 나는 종교에 귀의 할 테다.
아직 그렇지 않기에, 사회과학도로서 의심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 작업은 계속 해 나갈 것.


* 문화체육관광부 발표 ‘2008 한국의 종교현황’
불교 1072만 6463명
개신교 861만 6438명
천주교 514만 6147명으로 각 1,2,3위다.
개신교는 1995년 조사때보다 10만여명이 줄었으며 천주교는 10년전보다 220만명이 늘었다.
(출처 – 해럴드 경제 1월 19일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꼬리 한 줄 한 줄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종교에 대해 하고픈 이야기는 이제 첫 장을 넘겼을 뿐

“만들다 만 신 (수정 보충판)”에 대한 3개의 생각

  1. 믿는 사람의 수가 기준이라..
    다수결이 반드시 다수선이 될 수는 없기에 항상 소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정치명제가 종교에도 반영되네.
    종교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은 경제가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과 함께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봐. 둘 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룰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보거든.
    단적인 예로 선교 활동이야 말로 정치선전과 마케팅 기법을 동원한 세 불리기잖아.

    신의 존재유무를 과학적, 논리적 방법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예전에도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종교를 논리로 증명하는 일은 물의 부피를 (세제곱 미터가 아닌)미터로 재려는 것과 같다고 봐.
    애초 거기 쓰는 물건이 아닌거지.

    마지막으로, 신이 이미 거기 있었던 사람은 신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 언제부터 인식했는지 기억 안 나지만 우리 부모가 나를 낳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것처럼.
    허나, 부모없이 이십년 넘게 살다가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면 누구든 의심하겠지?
    모태신앙인 목사 딸내미랑도 이야기 해 봤는데, 그 나름대로 의문이나 회의도 들었다 그러더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직결되어 있으니 칼 자르듯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을 순 없는 문제겠지

  2. 신의 존재에 대한 내 생각은 허무주의랄까?
    신은 전지전능(이 자체가 우리 논리론 모순이지만)하고 우리가 감히 생각도 못 할 계획과 권능을 가졌다 그러잖아. 그럼 우리가 뭐하러 신을 향해 아둥바둥 거리는가 싶어. 2차원 종이에 3차원 물체를 넣을 순 없잖아. 그릴 순 있지만 3차원 물체의 부피를 절대 구현할 수 없지. 이와 같이 인간이 2차원이라면 신은 3차원. 도저히 넘나들 수 없는 세계 너머에 있는게 신이라면 우리가 애써 생각해 무엇하나 싶어. 그냥 콩 한 쪽 나눠먹는게 좋으면 그렇게 하는거지. 성경이나 불경에 나와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2차원 인간들끼리 그렇게 사는게 괜찮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

    정말 인식의 범위 밖에 있는 존재라면 굳이 인식하려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인식하려 해도 인식할 수 없으니

  3. 응!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첫 걸음이 로마 국교 선정인데, 첫걸음부터 지극히 정치적 빅 딜 형태였잖아.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절대권력을 뒷받침해 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기독교는 세금이나 병역의무 등에서 벗어나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을터. 우리네 시골마을 입구에서 모시는 잡신 수준의 토속신앙들은 뭔가 미흡한 면이 있었는데, 야훼는 워낙에 전지전능에 유일하고 막강하니까 콘스아저씨 입맛에 딱이지 않았을까.

    네 말대로 “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은 채로 서로 관용을 가지는 것”이 좋긴 한데,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보면 그게 잘 안 된다는게 문제거든. 또한 그 관용이나 허용이 무너질 때 9.11테러나 이스라엘 문제, 시가지 자살테러가 생기잖아. 유일신 종교는 교리적으로 관용이나 허용이란게 힘들거든.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확신범은 지능범보다 무섭다”
    지능범은 협상의 여지가 있지만 확신범은 여지를 주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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