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너희들을 기르는데다가 우리 인생을 희생했다고 하잖아요.
자식들이 입지 말라고 얘기한 적 없고 먹지 말라고 얘기한 적 없거든요.
자기가 좋아서 한 거잖아요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 좋아서 한 것을 가지고 아래세대들에게 그것을 인정해 달라고 외치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거구요
점잖게 앉아 받아먹는 수밖에 없는 건데,
사실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자식들한테 투자한 이유가 나중에 덕 보려고 그런 것 아니냐,
자기 인생으로 쇼부가 안 나는 걸 자기 자식들을 마음대로 조정해서 자식들 꿈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투입해서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려는 게 아니냐는 거죠
그 매출이라는 게 우리 사회 특유의 체면상으로 동네방네 자랑할 수 있는 입신양명의 개념이잖아요.
투자해놓고 투자한 만큼 안 빠지면 절규하고,
그런 기성세대의 위선이 삼풍하고 성수대교에서 산산이 무너진 거죠.
사실 노래 제목은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니네가 만든 세상을 보라’ 거든요
이렇게 엉망진창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순서도 없고 양심도 없고 이런 세계를 만들어놓고 자꾸 자랑을 하니까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나마 입을 닥치고 있으면 괜찮은데, 왜 자꾸 자기네가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냐구요
좋은 세상의 근거가 항상 그거예요
옛날에 우리 때는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느냐,
니네는 행복한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사림이 돼지 새끼도 아니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게 해놓고 자식들을 먹였다는 걸 가지고 목에 힘을 주니까, 뭐 어떻게 하나는 거냐고요”
– 지승호 인터뷰집, ‘신해철의 쾌변독설’ 222,223쪽 중에서
내가 한 동안 잊고 있던 생각을, 아주 막 되먹은 말(?)로 시원하게 정리해 주는 신해철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라고해서 자식의 미래에 관여할 권리가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없다”
단지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이 신해철과는 약간 다른데,
이건 인류의 생존방식인 내리사랑이란거지.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먹는 부모의 모성애는 어떤 동물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진 빚을 아들에게 갚고 아들은 자기 아들에게 갚는 식으로 내려가는 것.
채무의 세대 간 승계랄까?
여튼, 부모는 시혜를 베푸는게 아니라 자기 부모한테 입었던 빚을 갚는거니까 아들 세대에게 이걸로 해라 저길로 가라 할 수 없다는거지.
“자기 인생으로 쇼부가 안 나는 걸 자기 자식들을 마음대로 조정해서 자식들 꿈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투입해서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려는 게 아니냐는 거죠”
이 부분 완전 신랄하다.
나라면 당최 입이 안 떨어질 말인데, 역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