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근하는 대구 남부도서관은 앞산(비슬산) 밑에 있어 버스정류장에서도 100미터쯤 올라가야 한다.
오늘 버스정류장에 내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3차선에서 자전거를 연결한 리어카를 끌고 오르는게 아닌가.
리어카에는 폐지와 재활용품,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인도로 가면 차량 흐름에 방해도 안 되고 아저씨도 안전할 텐데 왜 저리 도로로 나와서 용을 쓰실까…
새카맣게 탄 얼굴로는 50대인지 60대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오르막을 거슬러 오르기가 힘이 부친 듯 했다.
저러다가 도로 내려오지 않을까 싶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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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순간에 수십번 내 생각은 왔다갔다 했지.
차도로 뛰어들어 50미터쯤 남은 오르막이나마 밀어드려야 하나
그렇게 하자니 도로에 뛰어들어 남의 리어카를 밀어 주는 꼴이 남사(‘남우세’의 경상도 사투리)스럽지 않은가
스쿼트 120kg을 들던(과거형) 타고난 하체가 고작 50미터 경사로에서 지칠리도 없는데.
결국 남우세가 우세해서 내 책가방 하나만 짊어지고 도서관에 들어가 버렸다.
왜 아저씨 리어카를 밀어주는 게 남우세스러운 일로 생각되었을까?
신자유주의 논리와 ‘남우세’의 사전적 정의를 조합하면 대충 변명이 가능해진다.
신자유주의는 개개인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면 시장에 의해 세상은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나의 교환가치 상승을 위해 토익공부 할 시간과 에너지를 타인의 재활용 리어카 끄는데 소모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비웃음과 놀림을 받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
내 생의 기억이 시작되는 어린시절부터,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우리 집은 한강이남 최대 시장이라는 ‘서문시장’ 바로 옆에 있었다.
광대한 시장 건물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서문시장 4지구로 기억한다. (몇 년 전에 큰 불이 났던 그곳이다)
원단을 판매하는 포목상점은 건물 2층에 많았고 리어카꾼들이 경사로를 이용해 2층까지 물건을 배달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친구들은 리어카꾼이 경사로에 진입하면 새끼 오리떼처럼 달려들어서 리어카를 2층으로 밀어올리곤 했다. (그때부터 하체발달이?)
어린 나이에도 뭔가 ‘우리 힘으로 돕는다’는 생각에 상당히 뿌듯한 놀이였다.
전혀 남사스러울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선 어설픈 맑스주의 + 개량 자본주의 + 소량의 아나키즘 이다가, 거리에 나서면 투철한 신자유주의자가 되는가……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세상은 조그만 도움도 남우세스러운 곳이 되어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