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 보내는 백수청년의 안부편지

안녕하십니까!


무신 일이 있어도 25일에 졸업식을 여는 전통의 경북대학교는 오늘 코스모스 졸업식을 거행했겠지요.


저는 동계 졸업식을 시작으로 백수생활에 들어갔으니 오늘부로 정확히 백수 6개월차가 되었습니다.




5월 쯤 교수님이 전화 주신적 있으시죠.


그 때는 찾아 뵌다고 했는데 어영부영 결국 몇 달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땐 사실 조금만 더 지나면 취업될 줄 알고, 중간 보고 하느니 합격 소식과 함께 새출발 보고를 드리러 가자는 심정으로 미루었습니다.


결론적으론… 아직도 못 찾아뵙고 있지만요.




백수 6개월은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조언해주신것처럼 ‘사회에 나갔으니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려 했으나…


홀로 떨어진 상태에선 그런 치열함이 생기지 않더군요.


제 천성이 그런가 봅니다.


조직 안에서 조직 목표가 아니면 당최 매진하고 싶은 맘이 생기질 않으니…


첫 달은 좀 고달프고 서글프고 하더니만 이내 아름다운 포지티브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그 생각이 좀 더 확실하게 들더라고요.




허송세월한 건 아닙니다.


토익 성적은 거의 발전이 없습니다.


당최 흥미가 생기진 않지만 약간씩이나마 노력중이지요.



토익 대신 잡다한 생각들을 많이 하고 보냈지요.


교수님이 ‘영상론’ 수업시간에 이런말씀 하신적이 있습니다.


“내 식구들 입에 밥숟가락 떠넣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교수님은 꽤나 진지하게 말씀하셨고 학생들은 그냥 멍~한 상태였지요.


아, 함민복 시인도 잠깐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모습과 학생들의 반응 등, 강의실 풍경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장 알바 20종세트 경험자로서 밥숟갈 쟁취하기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런 제가 요즘은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 식탁에 앉아 밥숟가락 하나 얹어놓고 6개월째 도서관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 밥숟갈 쟁취하는 일이 쉬운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문제지 못 할 것은 없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면접에서도 자신을 잃기는 커녕 저의 절대적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 있지 않습니까?


저는 넘어진 김에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다시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을때, 만약 옳은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백수생활에 대한 합리화 일 수도 있지만, 졸업과 동시에 취업 했다면 저는 흙탕물을 튀기며 아닌 방향으로 더 빨리 뛰어가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방향이 그릇됐다면 차라리 다시 넘어지는게 옳다는 생각이지요.


그 방향은 제 적성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정의 같이 대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386운동권이나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채의식’이란게 자주 나옵니다.


그들이 말하는 죽은자에 대한 부채의식과는 다르지만, 저 역시 교수님과 학과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그 부채를 갚는 방법이 12개들이 알로에 주스를 들고 분기별로 찾아가 연구실 문턱을 닳게 하는 것은 아니라,


삶에 충실하다 어느 순간 당당히 나타나 연구실 나무 문짝을 두드리며 막걸리 한잔 대접하는 쪽이라 생각하기에


그 방문을 잠시 잠깐 늦춤을 용서해 주셔요.






인터넷 세대들에겐 장문의 횡설수설 끝에 이런 말이 붙습니다.




세줄 요약


잘 있습니다.


백수생활 할 만 합니다.


찾아뵙고 막걸리 받아드릴때 까지 건강하십시오 ㅜ.ㅠ…



교수님의 답장


 준희야,


 살아있구나. 높이 날으는 새는 자신의 뼈를 추리는 법. 조급한 마음은 들겠지만 꾸준히 정진하거라.


 힘들면 연락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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