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란 말을 못 하는 이유

난 전역 후 대학 8학기를 휴학과 계절 학기 한 번 없이 내리 다니고 졸업했다.

 

휴학이 없었던 것은 빨리 사회라는 필드로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고,

계절학기가 없었던 것은 방학 동안 등록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낮은 학점과 아메바 수준의 토익점수로 전전긍긍한 백수생활 1년

1년 반 동안 아마 입사 원서를 100개는 넣었을 거다.(45개 이후로 세는 걸 그만뒀다)

 

휴학하고 해외연수를 가거나 계절 학기를 통해 학점 세탁을 했다면 내 이력서에 적힌 숫자는 달라졌을 것.

 

만약 학점과 토익점수가 더 높았다면 서류 통과가 더 쉬웠을 것이고 더 많은 면접을 봤을 것이며 보다 많은 매출액을 내는 기업에 보다 높은 연봉으로 입사할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알바하지 말고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라고 충고해 주는 선배도 있었다.

 

옳은 말이다.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이렇게 좋은 구도가 어디 있겠나.

 

최근에 최 군이 전역해서 복학 전에 돈 번다며 울산으로 떠났다.

이력서에 채워 넣는 숫자가 취업시장에서 어떤 의미인지 아직 모르는 후배에게 ‘알바로 푼돈 벌 생각 말고 공부해서 장학금 타라’는 말을 하려다 황급히 집어넣는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타는 일은 개인에게 분명 좋은 일이다.

자기 공부 되고, 학비 굳고, 세상은 착한 아이 똘똘한 아이 바른 아이로 보고

 

허나 이걸 대학단위, 사회단위까지 넓혀서 보면 어떨까?

 

내가 학비 전액면제 장학금을 받았다 치자.

그럼 그 돈은 대학이 그냥 선심 써서 안 받고 마는 것이냐?

 

그럴리 없잖아.

장학생도 학교 화장실 쓰고 수업 듣고 도서관에서 책 빌려 보는데 그 재원은 어디서 나는가?

다른 학생이 낸 등록금이나 국고, 기업 같은 외부 단체의 지원에서 나온다.

 

한 마디로, 누군가의 혜택은 반드시 누군가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등록금 투쟁할 때 신입생들에게 더 높은 인상률을 적용하는 ‘차등납부제’와 05년부터 신설된 도전장학금(이름이 맞나?)제도가 큰 화두였다.

차등납부제는 입학도 하지 않은 신입생을 볼모로 삼는 것이고, 도전 장학금 제도는 ‘니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전액 등 파격적인 장학금을 주니까 민주광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도서관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등록금 투쟁은 연대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개인이 모두 전액 장학금을 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등록금 인상률이 매년 두 자리 수든, 새내기를 볼모로 차등 인상 하든 하등 개의치 않는다.

 

학생 대부분이 장학금만 바라보고 달리면 재학생 4천명이 총회를 열어 본관을 압박하고 협상하는 과정은 불가능해진다.

 

개인이 자기 영달만 생각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란 당연한 이야기.

그래서 후배에게 ‘장학금 받으란’ 조언을 못 하는 거다.

(이는 경제학에 지겹도록 나오는 게임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모든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겠다고 도서관으로만 향하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한대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수혜를 받고 누군가는 대출이나 방학 알바를 해야 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수가 연대해서 국고 지원을 받아내는 식으로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멋진,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 아닌가.

 

그것이, 문제를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 차원으로 바라보는 사회과학도가 취해야 할 행동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사회과학도다웠던가…

졸업하고 나서 다시 되돌아본다.

 



* 최 군아, 몸 성히 돌아오니라.

땀에 절은 작업복이 전액 장학금 보다 값질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고도 좀 닭살이군)

 

+ 월급날엔 꼭 전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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