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상장은 하지 않도록 하게”
나는 단순히 자금만 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간섭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배당금도 주고 싶지 않다. 이익은 모두 직원들에게 배분한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경영자의 것이다.
– 주켄 사람들, 237쪽
주식투자상담사 같은 책을 보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열매맺기’ 정도로 표현한다.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규모나 업력이 일정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상장하면서 그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기업이 된다는 것.
상장으로 인해 기업은 새로운 자금을 들여와 사업에 추진력을 더할 수 있고 사회는 기업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어 좋다… 는 것이 대충의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주식이 사회적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한다는 말은 예전 증권사 면접에서 내가 한 말이기도 하고(면접관한테 ‘상당히 이데올리기 적’이라는 말도 들었고).
과연 기업이 성장하면 상장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위에서 인용한 ‘주켄 사람들’은 일본의 중소기업 ‘주켄공업’의 마츠우라 모토오 사장이 쓴 책이다.
신입사원 채용은 선착순.
학벌도 성별도 심지어는 국적도 상관 없다.
다만, 올해 3명 뽑기로 했는데 너무 예쁜 여성이 4번째에 오면 신입 정원을 4명으로 늘린단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은 학력은 물론 국적이나 출신성분까지 다양하다.
회사에 들어가면 출퇴근은 자율이다.
정년따윈 없다.
출장 후 영수증 정산도 없다. 그냥 회사 카드로 쓰면 그만이다.
동네 폭주족과 고졸 중졸 사원들을 데리고도 세계 최초로 100만분의 1그램짜리 톱니바퀴를 만들었다.
너무 작아서 아직은 이 톱니를 써 줄 완성품 업체가 없을 정도다.
이런 회사를 만든 모토오 사장에게서 ‘기업은 성장하면 반드시 상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좀 얻는다.
상장을 하면서 얻게 되는 이점은 이미 수많은 텍스트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상장 하면서 잃게 되는 것들은?
상장을 하면 본격적인 펀드 자본주의, 단기간 실적주의 경쟁에 편입 된다는 소리다.
주주는 직원이 아니다.
그러니 그곳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누구네 집안이 어려운지, 누구네 아들이 학자금이 안 나와 대학을 못 가게 되는지 따위는 알 수 없다.
주주가 냉혈한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아닌 돈이(혹은 실체 없이 디지털로 만들어진 주식이) 움직이는 펀드 자본주의에서는 시스템적으로 그런 걸 알 수 없게 돼 있다.
대부분 주주의 목표는 주가상승, 혹은 고배당 이 둘 뿐이다.
그곳 직원이 행복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높은 수익을 내길 바란다.
양계장 주인이 자기네 닭이 행복하길 바란다기 보다 하루에 하나씩 알을 꼬박꼬박 잘 낳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마츠우라 모토오 사장은 이미 일찍부터 상장 기업이 가지게 되는 위험을 알고 있었다.
기술과 사람에 투자해야 하는 기업이 단기 실적에 치중하면서 인건비를 낮추고 기술투자를 소홀히 하며 단가경쟁에 뛰어들 위험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 입장에선 회사가 상장하는 것이 좋을까?
상장 하면 우리사주가 뛴다거나, 자기 회사의 인지도가 높아진다거나, 혹은 은행 대출이 좀 더 쉬워진다거나 할 것이다.(은행 직장인 대출은 대출 자격을 상장사로 한정해 놓기도 한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주주라는 사람들이 총회를 열어 사장을 바꾸거나 여러 형태의 외압으로 자신의 일터를 흔들 수 있다.
반드시 비상장이어야 할 필욘 없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살 맛 나는 직장은 직원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주주는 직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치명적인 간섭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