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이 2학기부터 체벌을 전면 금지키로 했습니다.
(이제 방학이고 보충수업 시작일 테니 2학기 오기 전에 실컷 때려보자 하는 선생도 있겠지요..)
애들은 맞아야 한다는 매저키스트와
나도 맞아서 인간 됐다는 새디스트를 양산하는 곳이 한국 학교인 것 같습니다.
스승의 날에 미담이랍시고 나오는 게,
“아이고 선생님 그 때 선생님이 나를 줘 패 주셔서 제가 이렇게 사람구실 합니다~”
하면서 손을 꼭 붙잡으며 옛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지요.
그런 특수한 경우, 때린 선생이 학생을 생각하는 진정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접고 들어간다 쳐도… 정말 그딴 방법 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정말 그 학생은 두들겨 맞아야만 사람구실이 가능 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아마 학생 때 두들겨 맞은 덕에 인간구실 하게 됐다 믿는 사람은 자기 아이들도 두들겨 패서 인간으로 육성할 확률이 높겠지요.
저는 평범한 사립고를 나왔는데, 어느 학교에나 다 있듯 저희 학교에도 미친개 몇 명이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어 선생이 유명했습니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선생처럼 이 선생도 손목시계를 풀면 봉인을 푸는 것과 같습니다.
애를 교실 앞문에서 패기 시작해 뒷문으로 나가 복도를 돌고 다시 앞문으로 들어오는 전설 같은 실화도 있었고요, 학생을 발로 밟다가 그만 밟으라고 발 붙잡고 애원하는 학생에게 피 묻어서 옷 더러워지니까 놓으라고 하던 선생입니다.
일본어 책 본문을 못 외워오면(못 읽으면도 아니고)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는데, 전 그거 맞는 게 너무 싫어서 시내 서점에 최면술 책을 사러 가기도 했습니다.
최면 중에는 맞아도 통증을 못 느끼게 만드는 최면도 있다 그러더군요.
덩치는 남보다 작지 않았지만 맞는 게 너무너무 싫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고1이 맞는 게 싫어 대형서점 귀퉁이에 박힌 최면술 책을 뒤적거리다니…
아니, 사실 끔찍하기로 치면 예전을 회상하고 있는 지금보다 매주 월요일 6교시 일본어 시간을 기다리는 그 때가 훨씬 끔찍했지요.
사랑의 매인지 선생의 편의를 위한 폭력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매를 잘 들기로 유명한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존경 받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이걸 극명히 경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이 일본어 선생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이 반에 도는 겁니다.
그러니 애들이 어떤 반응이었겠어요?
“아, 어떻게 선생님한테 그런 일이…”
…
..
.
따위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싸, 오늘 일본어 들었었는데(수업 안 해서 다행이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학생들이나고요?
그래요, 맞습니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학생들입니까…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낸 겁니까?
선생한테 밟히다 보면 순간적으로 그 선생이 죽었으면 좋겠다 싶은 맘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물리적으론 선생이 학생을 치지만 심리적으론 학생도 선생을 마음 속에서 처 냅니다.
제게 거저 시켜줘도 못하는 직업 2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의사요 두 번째가 선생입니다.
의사는 피 보는 거라서 못하고 선생은 애들 가르치는 일이라 못해요.
나 스스로 애들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다고 생각할뿐더러, 애들 가르치는 일은 나 같은 아무나가 하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해서입니다.
선생이 성인군자길 바라면 내가 도둑놈이지요.
다만, 어린 생명 40명쯤 들어있는 우리에서 왕이 되고도 최소한 짐승아닌 인간의 얼굴을 유지할 수 있는 자가 선생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평범한 초중고에서 12년을 보낸 청년이 존경할 선생 단 한 명 없다 자신한다면, 이건 오만한 건가요 씁쓸한 건가요?
경제학에선 ‘인간의 얼굴을 한’ 이라는 문구가 유행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이는 이전까지는 인간 같지 않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여기에 체벌금지를 시킨 오늘, ‘인간의 얼굴을 한’ 교육을 덧붙입니다.
체벌을 하고 싶다면, 오직 스스로에게만 하시길…
추후에는 아마 자학만이 유일하게 인정되는 폭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