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연애조작단 – 짝짓기의 고달픔

영화 관람을 시간 낭비 돈 낭비라 생각하는 제가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일종의 문화생활비 덕분이지요.


까고 부수는 액션 영화나, 너무 뻔한 꿈을 강요하는 아동 영화에선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기에 멜로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연애질은 아무리 뻔한 소재라도 누가 어떻게 버무리느냐에 따라 다르다 싶거든요.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맛깔나게 버무린 음식입니다.

일 년간 영화 한 편 안 본 친구랑 같이 봤는데, 보는 내내 친구도 저도 즐겁더군요.

친구는 생각보다 재밌었답니다, 전혀 기대를 안 했기에……


어차피 줄거리야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지니 생략합니다.

짤막한 감상 한 줄 남기지요.


저는 이 영화에서 짝짓기의 고달픔을 느낍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내 고양이 건강하게 키우는 50가지 방법이란 책을 봤는데 거기보면 고양이에겐 짝짓기 대상에 대해 예쁘거나 추하다는 개념이 없다더군요.

그냥 발정기 되면 수컷들끼리 싸워서 일등한 애랑 짝짓기 하는 거지요.

그게 동물의 세계입니다.


인간의 세계는 훨씬 더 많은 변수가 작용합니다.

머리가 아프지요.

그래서 우리 결혼했어요의 알렉스는 브라운관 밖의 현실속 남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현실 남자들의 공분을 살 만큼 여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눈높이를 끌어올리거든요.


영화를 보기 전에 한겨레 출판사에서 나온 ‘4천원 인생’을 막 완독했습니다.

거기 보면 공장의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쉽사리 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 달동안 야근까지 줄곧 해서 200은 커녕 150도 빠듯한 주머니 사정이라 아가씨들이 맘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여자의 맘을 얻으려는 남자는 펀드 매니저입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 업계에서는 탑클래스’라고 스스로 말하고 자동차도 제네시스를 탑니다.

일단 여기서 4천원 인생에 등장하는 현실의 공장 노동자와 영화속 남자는 넘사벽입니다.


물론 탑클래스 펀드매니저도 영화 속에선 별의 별 영화 같은 쇼를 다 벌이긴 하지만… 4천원 인생의 공장 노동자였다면 일단 잔업 때문에 데이트하러 다닐 시간이 빠듯했을 것이고 해수욕장에 세트를 설치하는 스케일 큰 고백 이벤트도 예산 문제로 준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 고달픕니다.

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건 영화죠.


현실속 남자들이 모두 탑클래스 펀드 매니저가 아니고

발을 씻겨주는 알렉스가 아니고

100m를 8초대에 뛸 것만 같은 우사인 볼트가 아니고

유치원 학예회에 데려 놔도 전국노래자랑 웃음판을 만들 것 같은 유세윤도 아니어요.


다만, 고양이 세계와는 달리 매우 디테일해진 인간 세계의 짝짓기 방법이 매우 고달프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국에 계신 프로포즈 이벤트 업체 사장님들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본질적인 고백, 그렇게 담백하게 하면 안 되나요?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