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모임으로 나간, 일종의 신도시 예정지 임장 후기(가 전혀 아니다)
1.
신도시 개발로, 기존 마을을 허물 때 사료로 가치 있는 건물은 다른 곳에 복원해 두기도 하나보다. 마치 삽으로 떠서 건물 하나를 그대로 이전하는 개념은 건축가 입장에선 해당 시대 건축 양식을 온전히 살리는 거지만, 도시학자 입장에서는 마을에서 그 건물이 놓인 맥락이 제거되기 때문에 온전한 의미의 보전이 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0년된 정미소를 해체 이전하면, 그 때 정미소는 어떻게 지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과거 마을에선 정미소가 마을 초입 어디에 위치해 어떤 식으로 기능하는지는 알기 어려워 지는 것.
2.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보려 한다면, 네이버 로드뷰나 근현대사 박물관 같은델 가도 되지만. 우리는 한시간 정도 철거가 진행중인 마을을 걸으며 1940년대 일제시대 가옥이 들어선 마을의 맥락을 더듬어 나갔다. 이후에는 양재 말죽거리와 양재시장까지.
‘아는 만큼 보이고, 알게 된 후로는 전과 같지 않게 된다’는 뻔하고 식상한 말이 다시 한 번 와닿는다. 요즘 이런 뻔한 말을 자꾸 반복하는데, 맞는 말이니까 자꾸 상기하게 되고, 그래서 뻔해진건 아닐까? 오히려 새로운 걸 찾다보면 루나 코인 같은 걸 만나게 되고…..
3.
신도시 개발 지역 곳곳에 알박기 용도로 보이는 가건물과 경작물이 보였다. 그 수만큼 추가경작 금지, 뭐뭐 금지 플랑도 있었고. 개발할 때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이원화하면, 내가 사는 이 곳과 이 방식이 좋으니 나가기 싫다는 쪽과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쪽 아닐까. 전자는 집이 철저하게 살아가는 공간이고. 후자는 반대 의미로 철저히 살아가기 위한 증식 수단이겠지.
나라면 이런저런 불편하고 험한꼴 보기 전 가장 먼저 팔고 나와버릴 것 같은데. 이는 역시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 버티는 분들의 맥락 대신 현상만 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떤 맥락에 놓이냐에 따라 입장도 달라질 것.
답사한 금토동과 양재시장에서 인상 깊은 사진들
수령 90년 느티나무. 뭐건 오래 버티다보면 그 자체로 인정과 보호를 받기도 한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이 재개발 되어도 어지간해서는 잘 관리될 것. 물론, 애초에 적절한 위치에 뿌리 내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겠지. 재개발지 한복판에 있었다면 이미 개발 초기에 정리되었을지도. 자랄 위치를 보고 뿌리를 뻗자.
외국인 노동자, 특히 조선족 출신 없으면 공사현장 안 돌아간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공사 현장 플랑마다 한글과 중문이 병기된 걸 볼 수 있었다. 자동화 물결 속에서도 꽤 긴 시간 건설현장 인부는 기계로 대체하기 힘들텐데. 섬유 공장은 더 저임금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로 점차 이전했지만. 국내 노동은 최저임금이 있으니 여긴 어떻게 될런지. 한국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필연이라고 봐야겠지.
마을 하천은 한해만 풀을 배고 정돈하지 않으면 무성해지는데. 개발이익을 취하고자 몰려드는 사익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이익 있는 곳에 탐욕이 모이는 건, 설탕물에 개미 모이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정도로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다만, 그 물의 낙차를 통해 발전을 할 것인가 되는대로 흘려 보낼 것인가. 적절한 활용의 차이일 뿐. 각종 금지 플랑을 보면, 참으로 다들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생에 대한 의지 아닐까? 그 발현하는 모양새가 아름답지 않을 뿐.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 됐는데. 빌라 지하 주차장에 물이 가득 들어찼다. 저수조나 빗물 처리기가 제 역할을 못해 물이 고인 듯. 인간이 사는 곳은, 특히 도시는 인간이 관리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더 빨리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
말죽거리를 걷다가 만난, 예전에 친구가 운영했던 커피숍. 도시의 맥락을 따라 걷다가, 내 서울생활 초입 시절을 만났다.
영동족발 뒤편 주상복합. 1층은 서울탁주를 모아 유통하는 허브 같은 곳이고. 2층은 주거공간. 정중앙에 양쪽으로 갈라지는 계단이 특이하고 꽤 효율적일 뿐 아니라 정겹기까지 하다. 뭔가 저기서 1동 사람 2동 사람이 마주치며 시트콤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런 소소한 기대감을 주는 배치다.
한국인 평균 신장이 커져서 그런가. 요즘 건물은 층고도 높고 전체적으로 볼륨감이 큰데. 예전 건물은 마치 성인 눈으로 보는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약간 미니어처 같이 보인다.
세상에 목숨걸고 지킬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목숨은 하나인데. 아파트 위치를 보아하건데. 그 앞에 뭘 못 들어오게 하고 싶은 주민들 마음과, 금싸라기 땅을 놀리지 않고 싶어할 공터 건축주 심정, 양쪽 모두 너무 이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