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전하는 간접 경험은 인식과 이해의 범위를 넓혀준다.
이 책은 내게. 좁게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 도민의 맘을. 넓게는 이주민/철거민/혹은 그 둘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끝까지 저항하는. 누군가는 알박기라 하고 또 누군가는 데모꾼이라 하는 이들까지 어느정도 이해할 토대를 만들어 줬다.
정확히는 이 한 권 뿐 아니라 이 책 저자인 김시덕 박사와 함께한 답사 모임 덕이겠지.
살아갈 곳과 샀다팔 곳
책에는 places to live 와 places to buy로 구분해 표현한다. 살아갈 집과 투자할 집의 요소는 상당부분 일치하지만, 또 일부 어긋나기도 한다. 직장인에게 좋은 직장과 단타 투자자에게 좋은 기업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처럼.
순수하게 집 찾는데 필요한 정보만 뽑아보겠다면, 책 뒤편 5가지 항목을 체크리스트로 활용하는 것 만으로 훌륭하다.
- 국가정책은 아주 긴 시계열로(가끔 100년 수준) 현실에 반영되거나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후, 우리 어머니가 가끔 ‘우리집 앞에 8차선 도로가 뚫릴 계획이 있다’는 의미심장하게 하시는 음성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 한국전쟁 후, 아직도 안보는 도시계획 중요 키워드다. 안보를 건드려야 하는 공항과 군부대 이전과 엮인 건은 몹시 보수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 산사태, 물난리 같은 재난의 관점에서도. 일평생을 살 집이라면 몹시 중요하다. 10년에 한번이라도 나면 목숨이 위태로운 블랙스완 같은 미친 옵션이다.
- 교통, 그 중에서도 대중교통의 편리함. 나는 이제 조금 더 경기도민을 이해하게 됐다. 지하철과 버스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식과 배차간격으로 운영되는게 아니었다.
- 재개발, 오히려 이런저런 규제에 이중 삼중으로 묶여 재개발 될리가 없는 지역에 사는 게 평온한 삶일지도?
각자도생 국가
지반이 약하다거나, 건물이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특정 집단의 자본을 심각하게 훼손할 여지, 즉 집값 떨어질 여지가 있는 정보는 어디서나 찾아내기 힘들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각자도생해야 한다. 내가 살 집을 내가 알아서 잘 정해야 한다는 거다. 내 선택인까. 혹시 나중에 들어와 살면서 알게 된대도 다음 주자에게 폭탄을 돌릴때까지 잘 버텨야 한다.
한국인 대개가 잠재적 이주민
이주, 철거. 이런 단어에 내가 감정적 공감을 못했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겠다. 지방에서 올라와 원룸이나 투룸 살이를 전전하니. 내가 사는 곳에 평생, 아니 단 5년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만약에 이 집을 철거한다면 당장 1주일, 아니 진짜 급하면 하루 이틀이면 떠날 수 있으니. 내가 사는 이 동네와 집을 지켜야겠단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다.
내 가족과 쌓은 수십년 추억, 이웃과의 수십년 커뮤니티. 그런 걸 쌓아본 적이 없으니. 그걸 지키고 싶은 사람들 맘도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그런데, 매해 재개발이 전국에서 벌어지는 한국에 사는 이상. 우리 대개는 잠재적 이주/철거민이다. 기쁘게 안전진단 D등급 축하 플랑을 거는 주민이거나, 망루에 올라 배수진을 치는 모습은 각기 그 양 극단이고.
푸드 데저트
도보 거리에서 식품을 구매할 수 없는 구역을 뜻하는데. 도보 5초 거리에 편의점이 있는 오피스텔촌 생활하는 사람에겐 낯선 개념이다. 인구가 너무 노령화되면, 모두가 도시에 모여살고. 젊고 창창한 일부 시민만 전원주택에 살 수 있으려나? 이조차 쿠팡배달이 해결해 줄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