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 동네 역사_독후감

관악 동네 역사_관악도서관에서 전자책으로 보기

신림동, 봉천동 거주 12년차. 이정도면 신림 봉천을 제 2의 고향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내가 발 딛고 지나는 이 동네 역사 서적이 나와 전자책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관악도서관에서 330일째 연체하는 사람이 있던데. 역설적으로 정말 관악구를 사랑하는 구민은 아닐까.)

주요 연혁

  • 전에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현재 시흥시와는 연결성 없는 구 시흥군)
  • 63년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_이촌동 지역 철거민 이주 시점
  • 66년 봉신동이 봉천동과 신림동으로 분리(즉, 봉천과 신림은 원래 한몸)
  • 73년 관악구 탄생
  • 75년 서울대 이전
  • 78년 남부순환로 개통
  • 80년 관악구 북쪽 절반이 동작구로 독립
  • 83, 84년 2호선 넉성대-서울대입구-봉천-신림 영업 개시
  • 88년 봉천천 하천 복개

 

봉천 신림 쌍두마차에 남현동 깍두기 느낌?

봉천과 신림은 동네 이름이 주는 느낌도 비슷한데, 과거엔 아예 봉신동이라는 단일한 행정동이었다. 하긴, 첨에는 허허벌판 이었을테니. 굳이 동을 둘로 나눌 필요도 없었겠지. 그러다 인구 폭발로 신림 11동, 봉천 13동까지 증식한 거고.

숫자로만 10개 넘는 동을 가지고 있는 건 전국 유례없다고 한다. ’08년 몰개성한 행정 동명 변경 작업’을 진행해, 마치 행복이 너무 절실해 지은 것처럼 보이는 행복동 같은 동명이 생겨났다.

반면, 남현동은 까치 고개를 사이에 두고 동작구 사당동, 방배동 과천시와 하나의 권역으로 묶여 ‘사회 문화적 배경이 상이’하다네. 아마 남부순환로 공사하면서 꽤 많이 깎은 걸텐데. 아직도 고개 경사가 상당하다. 지금도 눈 오면 그 큰 길을 차가 못 오르기도 한다. 강남에서 관악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거 뿐이라, 심리적으로 약간 고립된다는 느낌. 이런 까치고개를 사이에 둔 동네니 자연히 분리가 될 수 밖에.

 

예술인 마을 유래

까치고개에서 사당쪽으로 내려가는 그 일대를 예술인 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첨엔 무슨 홍대에서 밀려난 예술인을 받아주는 곳인가 싶었다. 알고보니 꽤 오랜 연유가 있더라고. ‘황순원, 서정주 등 십여 명의 예술가가 이 지역에 살면서 예술인 마을을 형성. 중산층이 다수 거주하는 전형적인 주거 지역’이란다.

 

관악을 만든건 9할이 이주

책 다 읽고 든 생각. 관악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하면 ‘이주’.

70~80년대까지는 서울 중심가에서 강제 이주당한 철거민들, 혹은 수해 입은 사람들이 이주해왔다면, 90년대 이후로는 서울에 직장을 얻은 지방 젊은이가 이주해 모인 곳이 관악. 심지어는 강북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 같은 건물까지도 이주해 오는게 관악이다.

“현대 관악구의 탄생기, 철거민과 수재민, 그리고 다른 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관악구에 정착. 이들 시민이 살기에 편하고 물가가 적당한 곳으로서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

“이곳에서 성공하면 다른 곳으로 갔다. 현대 서울의 확장과 인구 증가의 인큐베이터 역할”

“관악구 최초의 철거민 정착촌인 일명 승리촌. 88년 재개발 시작되어 93년에 신림 동부아파트로 준공. 승리촌 앞의 도림촌에는 승리교. 그 건너편에는 도림천에서 용나는 작은 도서관.”

“관악구 최초의 초등학교인 은천초등학교는 58년 6학급으로 개교했으나, 12년 뒤에 124학급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철거민과 수재민의 이주는 관악구의 역사와 문화에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관악구의 본질인 것이다.”

“남부순환로 없을 때는 난곡에 들어오는게 쉽지 않았어. 난곡 오자고 하면 쌀 1가마니 값을 줘야 할 정도로 택시들이 오려고 하지 않았지.(난곡동 골목이야기)”

“강북 지역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과, 관우를 모시던 남관왕묘도 사당으로 옮겨왔다. 사람뿐 아니라 건물도 철거되어 관악구 지역으로 쫓겨났다.”

“서울대학교 이전하면서도 철거민이 발생, 서울대 철거민 단지가 만들어졌다. 철거민을 자체적으로 생성하기도 하는 구다.”

“관악구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족은 1만 1072명으로, 서울시 자치구 중 3번째로 많다.”

다 옮겨적고 생각하니. 관악은 이주해 오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현재 지방 출신 직장인에겐 더 오래 거주할 곳을 찾기 전까지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20대에 서울에 직장을 잡으며 들어와, 30/40대에 결혼하며 일산/김포/부천 등지로 빠지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해 강남3구로 가거나. 그게 좁은 내 지인을 봤을때 관악구 거주민의 일반적 양태 아닌가 싶다.

 

국회단지는 국회 직원이 사는 곳이 아녀

강남에서 놀다, 한 친구가 방향이 같다며 택시를 같이 타고 갔는데. 이 친구가 국회단지라는 뭔가 봉천과 어울리지 않는 지명을 택시 기사님께 말하는 게 아닌가. 도착한 곳의 지형과 경사를 보면. 도저히 국회라는 고급 회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거주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대체 왜 국회 단지인가 싶었는데 이 의문도 풀렸다.

“국회단지는 민간에 의한 주택 개발 사업이 활발해진 70년대 초반에, 국회 내무위원회단지를 시행자로 조성. 국회단지라는 명칭은 시행자를 명시한 것에 불과”

“막상 집을 지어 놓고 나니 여기서 사는 사람은 한 놈도 없다.”

즉, 국회단지는 거주자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소유자와 개발 주체를 나타낸 것이더라.

 

복개도로는 진짜 개울을 덮은 거였어

이 책에서 가장 반가운 정보였다. 택시 기사 님들한테 길 설명할때, 복개도로 쪽으로 빠져서 가주세요. 뭐 나도 이렇게 말은 하는데. 정말 여기가 복개. 즉 개천을 덮어 만든 길이란 말이야? 의심할 수 밖에 없을 만큼 구간이 넓고 길다.

하지만, 정말 여기가 복개천이 맞았다. 심지어 2호선이 복개로를 따라 지상으로 지어질 계획이었다가 수정 됐다는 것도 놀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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