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대중화의 과속방지턱,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오직 챗GPT 만으로 글을 쓰고, 파파고로 번역. 인간 편집자는 기획과 최종 검수만 해서 만든 책이 있다고 해서 오늘 낮에 사봤다.

한 줄 평 하자면, ‘운전면허 시험장 연석을 들이 박았다는 우리 큰누나 도로주행 첫 날 블랙박스를 보는 기분’이다. 어질어질하다. 이 책의 가치는 ‘국내 최초 GPT로 쓴 책’이라는 타이틀이 전부다.

반말과 높임말이 한 장 안에서 문단 바뀔때마다 섞여 나오는 아수라장은, 이 책 기획자나 출판사가 출판업자로서 양심과 자긍심은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애초에 GPT가 뱉은 영문을 번역기로 돌리다보니, 어색한 번역투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을 잣대로 들이대면 그 어떤 번역서 번역 품질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

진짜 화가 나는 지점은, 이 책을 본 사람들이 ‘텍스트 생성형 인공지능 별거 아니네, 조잡하네’라고 오해하게 될 까봐 걱정스럽다는 것. 이 책이 인공지능 대중화의 과속방지턱 역할을 할까봐 짜증난다. 생각해보니, 과속방지턱은 과속을 막기 위한 좋은 의도를 가진 구조물인데…

근데 또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퀄리티의 책이 많이 팔릴리 없으니, 내 생각이 너무 앞서간 듯. 애초에 표지 그림과 내부의 시각적인 구성까지 너무 구리다. 어지간하면 책 만드는 로동자의 노고를 생각해 이렇게 감정적으로 까는 일은 없는데. 이 책은 종이책을 소비하는 독자의 기대치 하한선을 조금 더 낮춰 놨다.

GPT를 진지하게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진짜 ‘삶의 목적을 찾는 철학적 질문’이라는 대주제를 잡고, GPT 프롬프트와 진지하게 씨름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나은 내용이 나왔을 거다. 물론 씨름하는 사이에 ‘국내 최초’ 타이틀을 뺏겼을지는 모르지만.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8040928637
‘있다’와 ‘있습니다’가 한 문단에서 어우러지는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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