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에 타서 문이 닫히고, 그냥 툭하고 엘베 전원이 나감. 모든 버튼이 작동하지 않고. 엘베 안 전등도 꺼져 깜깜한 상황.
처음에는 오피스텔 이사짐 전용 엘베 배정 과정에서 아저씨들 조작 실수가 있었나 했음. 이사할때는 특정 엘베만 잡아서 특정 층에만 가도록 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런데 한참 지나도 작동이 안 됨
내 휴대폰으로 관리실에 연락했는데 안 받음
한 5분쯤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어 엘베 안에 있는 비상버튼 누름. 난생 처음 눌러봄. 신호가 가고 여자 상담원이 받음. 첫 마디가 ‘점검 중이세요?’. 아마 진짜 비상시보다 점검할 때 누르는 횟수가 훨씬 많나 봄.
그게 아니라 갇혔다고 말했는데, 저쪽에서 ‘잘 안 들린다고 크게 말해달라’ 함. 이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컴컴한 엘베에서 ‘갇혔다’ 소리지르는게 좀 민망했는데. 저쪽에서 몇번 안 들린다 그런 후에 연결을 끊으니. 아 이거 진짜 내가 살아야겠다 싶어서 다시 호출 버튼 누르고 약간 고함을 지름. 이놈의 엘베는 마이크 성능이 아주 허접한가봄.
엘베 기사가 출동하는데 30분 정도 걸린다면서, 혹시 그 전에 구출하도록 119 불러 드릴까요? 친절히 제안하는 상담원. 처음에는 ‘아, 그렇게까지 (요란스럽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라고 거절. 안내원은 알겠다며, 내 전화번호 묻고 지속적으로 연락해 상황 체크하겠다고 함.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안전 장치가 다 되어 있으니 안전하다고 걱정 마시라고 안내함. 이 모든 멘트가 다 매뉴얼화 되어 있을텐데, 매뉴얼도 상담원 대응도 참 잘 한다 느낌.
여기서 내 심리 상태 대 반전. 역도 수업 늦으면 안 되는데 정도로 생각하다. 갇힌지 한 10분쯤 지났을까? 문득, ‘내가 이 정육면체 안에 갇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거 아냐?’ 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한 그 순간! 문자 그대로 ‘숨이 턱 막혔다’. 엘리베이터 안의 산소 농도가 갑자기 변한 건 아닐텐데. 갑자기 숨쉬기 어려워진 것. 이게 아마 공황 증세 아닐까 싶다.
약속대로 내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다시 전화해 준 상담원에게, ‘아, 안되겠으니 119 불러달라’고 요청.
서 있기 힘들어 처음엔 쪼그려 앉았다가, 곧이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음. 인간은 무게중심을 낮춰야 심적 안정이 되나봄. 거의 본능적으로 나오는 자세 변화. 그리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식하지 않으려고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 같은 걸 쳐다봄. 마치 그냥 지루한 대기 시간에 휴대폰 하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공황 같은 느낌이 올라오지 않도록 애써 정신 챙기며 버팀. 나도 그 명상인가 뭔가 평소에 좀 수련해둘 걸 약간 후회함.
갇힌지 30분 가량 됐을때 119 구조대 도착. 문 두드리며 안에 계시냐고 물어봄. 나도 반갑게 문 두드리며 화답.
이어서 바로 엘베 문 열어 구해주심. 빠루로 문을 뜯는 건 아니고, 엘베 바깥에 잠금 푸는 열쇠 구멍에 뭘 넣어 돌리면 문을 열 수 있는 구조더라.
너무 당연히, 소방대원 님께 감사의 인사 크게 두 번 하고 역도 수업은 좀 늦게 도착할 수 있었음.
생각해볼 점
실수로 냉동창고에 갇힌 사람이 얼어죽었다. 근데 그 창고는 냉동기가 돌지 않아 실제 기온은 영상이었다. 이런류 이야기가 많은데. 글로 볼 때는 아 그런갑다 싶지만. 이제 난 진짜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은 힘이 세다. 내가 엘베에 갇힌 동안 산소 농도는 거의 변화가 없었을 것. 근데 마음의 동요 만으로 호흡이 어려워지더라. 바깥 세상 변화와 관계없이, 내가 세상을 인지하는 관점을 바꾸는 것 만으로 내 몸이 위험해 진 것.
여기서 나는 무슨 교훈을 무엇을 얻어야 할까? 이제 엘베 탈 때 조심해야 한다? 혹은 계단으로 다녀야 한다? 만약 엘베 안 타겠다면 도시생활. 즉 사회생활을 포기하겠단 소리. 엘베에 다시 갇힐 확률도 지극히 낮다. 내가 마흔 평생을 살면서 이런 일을 처음 겪은 것 자체가 그 방증. 교통사고 나서 이제 차 안 타련다와 같은 소리. 그보다, 엘베에 갇혀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평상심도 하나의 근력으로 보자. 발에 끼인 100킬로 짜리 자재를 치우기 위해 근력이 필요하듯. 혹시 엘베에 갇히는 상황이 왔을때 침착을 유지할 수 있는 평상심을 키워야 한다. 근데 뭐 어떻게 해야 평상심이 키워지는지 구체적인 건 모르겠는데. 일단 술과 커피와 SNS 실컷하는 삶은 하등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건 확실하다.
다른 누구와 함께 갇혔다면 어땠을까? 마침 내가 갇힐 때도 경비 아저씨 한 분이 상행선을 타려다가 잘못탔다며 내렸는데. 그 아저씨랑 같이 갇혔다면 어땠을까? 나나 아저씨 한 쪽이 공황이 온다면 다른 한 쪽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겠지. 반대로, 우리 둘다 평온하거나 어느 한 쪽이 강력한 평정심을 가지고 있다면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 갇힌 엘베를 결혼에 대입해볼 수 있겠다. 평소에는 잘 작동하지만, 어느 순간 가정에 문제가 생기며 전기 나가고 둘만의 관계에 갇혀 버릴 수도 있을 것. 그 때 내 배우자는 어떤 심리 상태일 것인가. 그리고 나는? 이 문제에서 최상의 답은, 애초에 건강한 둘이 엘베를 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