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독서토론 단상

■ 이상의 작품 세계 멋대로 해석하기

얼추(자세히가 아닌 ‘얼추’인 게 중요하다) 몇 개 읽다보니, 일자리와 아내 두 개 키워드로 압축된다.
더 날것으로 들어가면 먹고사니즘과 연애.

100년 전에도 구직은 어렵고 아내랑 잘 지내는 것 역시 힘들었구나.
사람사는거 역시 다르지 않다 새삼 느낌.

‘비범한 작가는 밥 먹다 아내가 뒤집어 놓은 숟가락만 보고도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작가는 세상이 멸망하는 아마겟돈 정도 큰 이벤트가 벌어져야만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고병권 아저씨가 그랬다.

이상이 천재인 이유는 천지개벽할 새로운 이야기를 해서가 아니라,
일자리 구하기 힘들어 아내한테 짜증내는걸 아마겟돈 마냥 전에 없던 양식으로 표현해 내서가 아닐까.

■ ‘나’의 ‘정체’는?

나는 누구인가 = 정체성 = 남들과 구분되는 지점
정체성에도 다양한 분류가 있을텐데. 크게 나눠보면 아래 세 가지 아닐까.

  • 물리적 정체성: 키, 몸무게, 근력이 뛰어나고 지구력은 약하고. 이런식. 헬스 동호회라면 3대 얼마, 벤치프레스 얼마. 이런 식으로 본인을 밝히겠지
  • 심리적 정체성: 성격, 취향, 어떠할때 어떤 반응을 한다는 식의 소개. 소개팅할 때 ‘성격 좋다’는 소리 들으려면 여기 포커싱해야지 않을까
  • 사회적 정체성: 관계와 역할로 규정되는 것. 누구의 아들, 어느 회사의 팀장, 누구의 친구, 어느서버 만렙 전사.

정체성은 구분자로서만 기능하면 될까? 아니, 의미와 가치가 있는 구분이어야 한다.
생리학적으로 누구 건 유전자를 풀어보면 70억 분의 1로 다른 인간과 구분되겠지만 그게 유의미한 정체성이냐는 다른 이야기.
결국 얼마나 큰 개인적/사회적 가치가 있냐는 필터가 추가된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나를 구분짓는 숱하게 많은 인자 중 뭘 쓸지 이미 취사선택을 한다.
사회적 정체성이라면, 내가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가장 큰 인자를 선택하는 것.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무원 5급 이상 되면 족보에 그 직급이 기재된다고 하는데.
이게 문중의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고 그 사람은 족보에 관직을 한 사람으로 기록되는 것.

모든 자기소개에는 의도가 들어간다.
나는 이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 나의 무엇을 부각할 것인가? 라는 판단.

삼성 이재용이 리니지를 시작했다고 치자.
길드 가입서(라는게 있는지 모르겠는데)에 과연 뭐라고 쓸까?

1번. 삼성 이재용입니다. 리니지라는 평민 게임을 해보려 합니다.
2번. 대기업 다니는 리니지 뉴비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1번과 2번의 의도 차이는 극명하다.
어떤 의도냐에 따라 자기소개, 즉 정체성의 인자 조합은 달라진다.

내가 만든 콘텐츠는 나일까?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을 익명으로 출간했을때,
‘전 유럽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스피노자 뿐’이라는 말이 돌면서 강제로 저자가 밝혀졌다는 말이 있는데.

이쯤되면 콘텐츠 자체가 인간의 모습을 하는 수준이 된 게 아닐까.

■ 작가와 작품의 분리

문학작품과 작가는 분리해서 소비하기 어렵지만,
과학/기술 산출물과 과학자/기술자는 분리가 쉽다.

이는 문학과 과학(기술)의 소비 방식 차이에서 온다.

문학은 독자의 해석이 중요하고, 작품을 해석하고 즐길때 작가에 대한 해석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런데 작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해당 문학을 통해 얻는 편익이 사라지거나 훼손된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다음엔, 도저히 예전만큼 그 노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 노래를 들었을때 도저히 과거 만큼의 편익이 나오지 않기 때문.

반대로 과학이나 기술은 그 이론 정립자나 기술 개발자가 아무리 개차반 짓을 해도. 그 이론과 산출물의 편익에는 변함이 없다.
포르쉐 박사가 나치에 부역을 해도 포르쉐 공랭 엔진의 우수성은 그대로고(브랜드 이미지의 타격은 별개),
잡스가 사이코패스 상사라 개진상 갑질을 해도 아이폰의 충격적 기능은 변함없다(역시 브랜드 이미지는 별개).

요즘 이슈 되는 성공팔이 저격도 결국 여기서 기인한다.
성공 콘텐츠는 과학보다는 문학작품 소비와 같은 셈.

자기계발서와 성공콘텐츠는 모두 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종의 카페인인 셈인데.
이게 플라시보라는게 밝혀지는 순간 약발이 안 듣는다.

돈 돌려줘.

■ 예술은 왜 필요할까?

일단 대학생 시절엔 내가 미대 애들이랑 소개팅을 해야하니까 필요했고.
지금은 사고의 확장을 위해 필요하다.

‘불륜은 나쁜 것’이라는 단선적인 사고로 한 평생 산다면.
사랑 없는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직접 닥치지 않고서는.
아니 닥쳐서도 생각지 못할지도.

예술은 시대의 첨병. 먼저 보는 자다.
본대에서 먼저 나가기 때문에, 가끔은 적에 발각되어 맞아 죽기도 한다.
또라이, 모난 돌의 숙명이다.

그 첨병 중에서도 일부만 살아 남아 전쟁영웅으로 공적이 기려진다.

■ 천재 3단 필터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1. 재능을 타고나고
  2. 환경에서 발현되고
  3. 시대가 간택한다.

어떤 대기만성형 인재도 재능이 전무했을리 없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말해서 구조를 이기는 개인은 없다.
아프리카나 내전 국가에서 태어나 1년에서 10년 안쪽 살다 포탄에 바스라졌을 천재가 얼마나 많을까
워런버핏도 미국에서 태어난 것 만으로 자신이 정자 로또에 당첨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마지막은 시대의 간택이 필요하다.
이것도 결국 구조다.
살아생전 간택은 물론이고 후세에 이어지면 시대의 검증까지 받아야 한다.

잠깐의 만들어진 천재와 거품도
결국 유구한 역사 검증을 통해 상당부분 날아갈 것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하지만 낭중지추.
어차피 모난 돌은 숨기고 싶어도 기침처럼 터져나온다.

그저 나는 범인의 길이나마 흐트러지지 않게 잘 걷길.

“꾿빠이, 이상. 독서토론 단상”에 대한 1개의 생각

  1. 이상은 천재인가?
    ‘정육무한육면각체’라는 단어 조합.
    이런 단어를 조합해 낼 확률 * 시집 제목으로 쓸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있을 수 없는 이 조합 만으로도 그의 식견이 남다르다는걸 알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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