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에 대한 인상평
뭐지? 읽긴 다 읽었는데.
단순히 책에 쓰여진 활자를 망막에 띄웠다가 지우는 걸로 읽었다고 할 수 있나?
‘역대 부커상 후보 중 가장 짧은 소설’이라는 수식이 붙었다는데. 역설적으로 소설 포맷으로는 매우 짧지만. 이미 숏폼 콘텐츠에 절여진 현대인들에겐 극도로 긴 콘텐츠처럼 느껴진다.
엄청 공들인, 그러나 건조한 10분짜리 유튜브 인트로 영상 보는 느낌. 도저히 빨리감기를 참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 책은 건조한 문체에서 주인공 심리상태 변화를 엿보는게 관건이라는데. 인스타와 유튜브 숏츠 절임용 뇌를 가진 나는 이걸 끙끙대며 1배속으로 읽다 과부하가 왔다.
어떤 콘텐츠는 2배속이나 건너뛰기로는 오롯이 즐길 수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준다. 모임 전까지 무시무시한 1배속으로 2회독을 끝낼 수 있길!
내용에 대한 평_연탄 아재의 부채의식
사실 마지막까지 활자를 읽기만 했지. 뭔 내용인지는 작가와 번역가의 글을 보고서야 사건의 해상도를 높여 이해할 수 있었다. 포맷이 아니라 내용을 더듬으며 간추린 키워드, 주인공의 부채의식에서 오는 정신적 분투.
‘나와 우리 가족만 아니면 돼’를 부인하고, ‘그래도 이러면 안 되잖아’라는 부채의식을 해소하기 위한 심리적 고군분투. 타기 전에는 칠흙같이 검고, 완전히 타면 흰재가 되는 석탄배달 아재처럼. 타다만 회색지대는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인 듯.
만화 송곳의 주인공과 결이 비슷한 사람아닐까. 낭중지추, 어디에 넣어도 결국은 삐져나오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