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7’, 테세우스의 배에 SF향 첨가

재미가 없진 않은데, 책을 덮고 나서 왜 이리 박하게 평가하고 싶을까 생각해보니. 후속권까지 다 샀기 때문인 것 같다.

‘봉준호 신작영화의 원작소설’에 혹한 내가 바보지. 결국 이것도 기대관리 실패. 그냥 SF 소설 원 오브 뎀으로 보면 그냥저냥 괜찮았을텐데. SF 장르를 너무 간만에 읽기도 해서 기대감이 쓸 데 없이 컸다.

그래도 밑줄 친 부분

‘테세우스의 배’에 SF 향을 조금 첨가한 느낌이랄까. 철학적 소재에 비해 스토리도 캐릭터도, 심지어는 SF 장르가 가지는 과학적 장치나 세계관조차 밋밋한 1차원 느낌.

SF 장치 중 그나마 인상적인 건 ‘총알 작전’, 적 행성에 빛의 속도로 날아가 때려박으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건데. 이 세계관 안에서 그럼 이게 무적 아닌가?

현대 핵이 가진 비대칭 전력과 비슷하긴 한데. 여기선 광속 넘기는 우주선은 어느 국가나 만들 수 있으니. 모두가 핵 한발씩 가지고 있다고 해얄까.

이 장치 때문에 국가 간 밸런스가 얽히고 설키는 느낌이 아니고. 그냥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이런 거 있어서 나쁜 애 생기면 언제든 한 방에 보낸다’며 손쉽게 해결하는 느낌.

“그것도 직업인가요?”

“사실, 그렇죠.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죠. 역사를 공부하면 …… “

“역사 자료들은 필요할 때 누구나 찾아볼 수 있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과 역사가의 차이가 뭔가요 .? “

“그러니까, 저는 그런 자료들을 많이 들여다봤죠.”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그런 일을 하고 돈을 받았고요?”

나는 망설였다. “직업이라기보다는 취미라고 하는 쪽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그웬은 약 5초쯤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쉬었다.

유튜버, 블로거, 인플루언서처럼, 불과 아버지 세대엔 ‘직업이 아니라 한량이자 취미’였을 일이 인기 직업이 되었지만. 우주여행 시대엔 다시 이런 직업이 취미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주인공의 취미인 역사가처럼)

그때는 다시 운전수, 전투병, 배관공 같은 아버지 세대의 명확한 ‘직업’만 남을지도? 미키 초반 역할도 거의 철물소 아저씨 롤 아닌가.

“이건 사실 수료식이 아니에요. 최종 시험 같은 거죠.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아침에 미드가르드로 돌아가는 셔틀을 타게 될 거예요. 나는 다시 징발되어 온 다른 사람을 훈련시키겠죠. 그것도 우리 둘 다 원하지 않잖아요.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이 맡기로 한 임무는 바로 이런 일이에요. 대가 없이 영생 을 누릴 수는 없어요.

소설의 불멸은 ‘영원히 죽지 않는’ 언브레이커블이 아니라, 죽어도 다시 세이브 지점에서 로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캐릭터 SAVE/LOAD 시스템과 같다. 주인공이 익스텐더블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이 권총 자살이다.

수차례 죽을 수 밖에 없는 임무를 맡아야 하는데, 죽음을 불사하는 각오를 집어 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뭐가 있을까. 각오는 어렵더라도, 죽음 둔감화 훈련이라도 해야겠지.

“너 종이 파쇄기에 손 넣어 본 적 있어?”

캣이 웃음을 더뜨렀다. “뭐라고? 당연히 없지.”

“왜? 죽지는 않잖아. 그리고 의수가 네 진짜 손보다 더 튼튼하기도 하고. 의료팀에서 몇 시간만 손보면
너는 새것처럼 다시 태어날 텐데.”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알겠지? 이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더라도, 꼭 그래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죽고 싶지 않아. 고통스럽거든.”

나를 포함한 많은 이가 죽음 그 자체보다, 죽는 순간의 고통을 더 두려워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주인공의 불사는 딱히 부럽지 않은 능력이다.

역설적이지만, 죽음만큼 평온하고 평안하고 평화로운게 있을까? 지옥불 고통도, 결국 그 끝엔 평온이 온다. 보통 사람에겐. 그러니 이처럼 비참하면서도 이처럼 은혜로운게 죽음일까.

다시 챔버에 들어가기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었다. 나는 주로 나샤와 시간을 보냈다. 가끔 대화도 하고, 나샤가 드라카에서 챙겨 온 카드 게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를 탐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주인공은 여가 시간 대부분을 섹스로 보내는데. 부럽긴 하지만 이 역시 작가의 상상력 부재 아닐까? 약물은 국가에서 통제한다 쳐도, 미래엔 얼마나 고도의 취미생활이 발달해 있을런지.

물론 놀이가 너무 정교하게 발전하면 다시 원초적인 걸로 돌아가 즐거움을 느낄 테고. 섹스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즐거운 놀이일테지만.

결말에서 주인공과 사령관 간의 두뇌 싸움도 너무 쉽게 갔다. 적들과 소통할 수 있는 외교관 역할이 가능한 게 본인 뿐이라는 말을 사령관도 너무 쉽게 믿고. 그냥 장단을 맞춰 준다. 힘빠지는 설득논리와 납득과정.

‘테세우스의 배’와 엮어 생각할 부분

‘과연 어디까지가 원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테세우스의 배인데.

연속성 관점에서는 ‘교체과정이 연속적이면 원본이 유지된다’고 보고. 물질적 관점에서는 ‘배가 훼손되는 그 순간, 혹은 첫번째 판자가 교체되는 그 순간 원본이 훼손된다’고 본다.

미키7 역시 연속성 관점에서는 매 호기가 원본이지만, 물질적 관점에서는 1호기 죽을때 끝났다. 7호기와 8호기가 동시에 만들어지면서 분기점이 생기면서 8호기는 더 이상 원본이라고 볼 수 없어지고.

근데, 이런 식의 복제가 끝없이 가능하면 원본이 어느 정도 중요성을 가질까?

예술품도 디지털 복제가 가능해지며 아우라가 희석되는 것처럼, 이제 모두가 자신을 복제한다면 원본이 가지는 지위는 어떻게 되며, 복제본과 원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수립해야할지. 또다른 사회학이 필요하겠네.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SF라는 장르가 이렇게 맥빠지지 않을텐데, 진짜 그 장르의 매력을 알려면 그 장르 거장의 책을 읽어보자!

덕분에, 아이작 아시모프 책을 읽을 결심을 하게 됐다. 고마워 애드워드 애슈턴 아재.


미키7 상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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