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 수석전시관_돌도 즐기는 법이 있다.

덕질이란 용어가 쓰이는 곳이 너무 흔해, 세상 만물이 다 덕질 대상이고 덕질하는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의 덕질 대상과 방식 대부분이 PC통신과 인터넷이 나오면 자리잡힌 것이고. 그 전에는 덕질 대상도 방식도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

오래된 덕질 중 하나가 돌을 모으는 수석인데. 돌에 감정 이입해 모으고 평가한다니. 이게 대체 뭔 짓인가 싶지만. 원래 모든 분야가 모르면 미친짓이지만 알면 또 깊고 깊어 미치지 않나.

경남 고성에 역도 시합하러 갔다 수석 전시관에 들러 관람한 기록을 남겨본다.

  • 사람은 그게 동물이건 돌이건 심지어는 0101로 이루어진 디지털 파일이건 정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 그 대상에 정을 주기 위한 필수재가 스토리, 덕질 대상과 나를 이어 붙이는 접착제.
  • 수석 세계에도 당연히 평가 룰이 있다. 메타 평가처럼 모든 취미에 이런 식의 원형이 되는 구조가 있을텐데. 앞으로 수석의 평가 체계를 다른 취미에도 적용해 빗대서 살펴봐야겠다.

경남 고성에 위치한 수석전시관 입구.

아예 입구부터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근데 첫번째 돌 이름이 ‘괴석’이라니. 이렇게 부르면 돌 입장에선 섭섭하지 않나?

모래도 수석을 꾸미는 중요한 장치였다. 수집자가 의도하는 대로 모양을 잡아주는 거치대면서 돌을 돋보이게 해 주는 무대랄까.

자수정. 이건 수석 동호인 아닌 까막눈이라도 ‘비싸고 희귀한 것’이라는 감이 온다.

보석 = 비싸다 = 희귀한 돌.

돈이란 건 참 편리한 점수체계다. 값이 매겨진 대상에 대한 식견이 전혀 없어도, 남들이 매겨놓은 가격이란 포인트만 알면 ‘좋고, 나쁘고, 귀하고, 흔하고’를 대번에 알 수 있으니. 그게 항상 정답은 아니라해도.

GPT한테 물어보니 40~50cm 정도 크기의 사진 속 자수정은 3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라 하네. 원산지가 우루과이고 색상이 깊다면 더 비쌀 수 있고.

이 거대한 돌을 이근식(경남 고성 거주) 씨는 대체 어떻게 중국에서 들여왔을까? 항공으로는 무게 초과 때문에 답이 안 나오겠는데.

수석은 동양 정신에서 우러나온 자연 사랑의 표현이다. 자연의 운행에 순응하고, 자연을 이상화(理想化)하는 동양의 자연관은 인간이 자연의 품 속에 묻힐 때 비로소 참된 가치와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을 전해준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돌을 사랑한 것은 이러한 대자연이 일깨워주는 진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참되고, 변덕없고, 영원하며, 굳고, 단단한 돌을 인생의 벗으로, 혹은 반려자로 삼고자 함은 인간만이 가진 자연사랑의 마음으로서 영원히 지켜가야 할 고결한 성품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친구나 반려자로 삼는 거랑 다를바가 전혀 없네???

수석의 요건: 수석으로서 아름다움을 지니는 데에는 다음의 요건이 있다.

첫째 : 반드시 한 덩어리로 이루어져야 하며 늘 무언가를 상징해 주고 그 상징에 의하여 멋진 형상을 연상시켜 주어야 한다.

둘째 : 정원석 보다는 작아야 하며 인공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천연의 것 이어야 한다.

셋째 : 수석의 기본요소인 형태, 질감, 색감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넷째 : 석질이 좋아야 하며 먹돌색, 갈색, 짙은 청색을 띠어야 한다.

다섯째 : 오랜 세월이 흘러 생긴 고태미와 품위가 있어야 한다.

자 외우자. 이게 수석인의 평가 기준이다.

반드시 대자연에 의해 랜덤추출된 아이템이어야 하고. 그 형상이 뭔가를 상징하기, 즉 이야기로 연결하기 적합해야 한다. 반대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붙이면 괜찮은 수석이 될 수도 있는 건가?

잘못된 예. 아무리 예쁘고 그럴싸해도 석공이 깎은 인공적인 돌은 안 쳐준다. 이를테면 내추럴 보디빌딩 대회에 스테로이드 약물 사용자가 난입해 비난 받는 격.

반면, 설명을 보기 전에는 전혀 뭔지 모를 빨랫돌 비슷한 것도 마더 내츄럴의 순수 랜덤 추출이면 적절한 해석을 곁들여 명 수석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자연이 뚫어 놓은 구멍이 있다면 엄청난 가산점이 주어진다. 그 구멍을 ‘투’라고 한다.

예상할 수 있듯, 전시용 프라모델 만드는 거랑 작업이 비슷하다.

역사로 보나 연배로 보나 프라모델 아저씨들의 선배라 볼 수 있겠지.

마치며

이게 수석 동호인 관점에서 어떤 돌인지, 어떤 스토리가 떠오르는지 알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인간은 어떤 대상이건 애착을 준다. 그게 설령 수십만년 전에 깎인 돌이라 해도. 근데 개인의 유한함을 생각해보면, 디지털 파일보다는 이쪽이 더 그럴듯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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