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합니까 대답해 주십시요

느닷없이, 미안합니다

뜻이 있는데 길이 있어서 그럽니다

맘대로 하라시지만

어렵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시지만

길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까 갑니까

가는 게 아닙니까

좋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나는 사랑합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그 대답이 접니다

그래도 우리가 고개 숙이는 만큼의

이 땅의 인력(引力)을

운명으로 사랑합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 ‘그냥’   정현종

내가 좋아하는 시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딱히 내 감상을 덧붙일것도 이건 뭘 상징하는 것이니 은유니 어쩌니 하고 해석을 할 구절도 없다

보는 사람마다 이 시를 읽고 조금씩 다르게 느끼겠지만, 그럼 그걸로 좋은거지

얼마간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얼마간은 서로 다름을 발견해서 낯선 설렘을 교환하면

그걸로 좋다.

시의 화자는 대체 누구한테 질문하는 걸까?

느닷없이 미안합니다. 누구한테?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된 자신한테 미안한걸까?

아니까 갑니까
가는게 아닙니까

나는 사랑합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그 대답이 접니다

하하…  그 대답이 접니다. 어떤 의미인가… 나는 사랑합니까에 대답할 수 있는건 결국 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대답이 나이다.

혹은 지금의 나를 봐라, 알지 않느냐? 지금 내가 사랑하느냐의 답이다. 모르겠냐?   이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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