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는 배려다.

독서실 생활 한 달 반이 되니 휴게실 열람대에 꽂혀 있는 잡지를 거의 모두 보게됐다.
열람 순서가 대충 시사잡지->정체불명 무가지->대학내일 순인데 정체불명 무가지에서 마침 매너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잽싸게 글로 옮겨본다.

여성잡지나 남성잡지, 혹은 싸이월드 게시물(여긴 없는게 없다)에 남자의 매너는 어쩌저쩌해야 한다는 식의 글은 단골손님이다.(편집자에게 새로운 소재를 발굴할 지적인 매너가 없나 보다)
그런데 이런 글들이 대게 매너리즘(고착화)에 빠진 매너들이거든.

매너의 핵심은 실질적 편익이 아닌 심리적 편익의 제공이다.

예를 들어보자.
길을 걸을 때 남자는 차도 가까운 쪽에 서서 여자를 에스코트 한다.
사실 그로인해 여자가 차에 치일 확률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까?

남자는 어디에서 출발하건 식당 입구에 여자보다 먼저 도착해 문을 열어줘야 한다.
어느 멍청한 식당주인이 여자 혼자 열지도 못할 수정문을 달아놓겠어

택시에 태울 땐 쪼로롬이 달려가 뒷좌석을 열어드려야 해.
일본 택시는 기사가 버튼으로 뒷문을 열어준다는데, 그럼 일본남자들은 행정소송이라도 해야할까?

중요한 건 여자가 실질적인 편익(문을 열 필요가 없거나 차에 치일 위험이 줄어드는)을 얻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심리적 편익을 얻기 때문에 매너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한 양성평등 캠프에서 대학생의 데이트와 더치페이에 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여기서 누가 기사도 매너의 양면성을 이야기했거든.
여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를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인 대상, 소유물 정도로 여기는 거라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잡지에서 본 매너를 그대로 실행하면 어떻게 받아 들일까?
나는 기계적 매너가 아닌 상대에게 맞춘 배려라면 충분히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이야기했었지.
젊은이 잡지에서 매너는 호감을 사는 연애기술 정도로 치부되는데, 진짜 매너는 남자가 여자를 또 여자가 남자를 대하는 기술이 아닌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배려로 보아야 할 것.
내 손으로 문을 열고 차로도 걷고 싶어하는 여자에게 기계적 매너를 강요하지마.
그건 상대를 만족시키는게 아니라 자기만족이야.

이러한 이유로 매너리즘에 빠진 잡지 편집자와 싸이 게시물 작성자들은 매너글을 개편할 필요가 있어.
매너는,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로 보이게 하는게 아니라
‘당신은 내게 중요한 사람입니다’로 느껴지게 하는게 원자력의 우라늄이다.
핵이라고!

매너리즘에 빠진 매너를 메쳐라.
매너는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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