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물질적 목표. 돈 벌어 5층 꼬마 빌라를 짓는다 치자.
3층까지 올리다가, 공사 기일 단축하기 위해 4층은 건너뛰고 5층을 짓자는 미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성공한 소시민이라도 이건 안 된다. 4층 없는 5층은 말이 안 된다는 게 직관적으로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빌라 같은 정형화된 결과물이 눈에 안 보이는 학습 분야에서는 4층 건너뛰고 5층 올리려는게 간사한 사람(=나) 마음이다. 내가 그간 학습했던 살사, 역도, 헬스, 영어. 모두 같다.
초보 시절에는 단순히 시간만 투입하면, 즉 그냥 출석만 하면 실력이 느는 시기가 있다. 제로(전혀 모름)에서 1(배우긴 함)이 되는 건 쉬우면서도 체감 효과는 크다. 살사를 전혀 안 배운 사람과, 1시간짜리 수업이라도 들어 베이직 스텝을 아는 사람 간 격차는 당연히 크지.
취미 영역에서는 그냥 출석만 해도 실력이 느는 시기가 꽤 오래 간다. 내겐 역도가 대표적인데. 몇년째 하고 있지만 지금 내게 가장 부족한 건 그저 출석수 뿐! 더 자주 가면 지금보다 더 늘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모든 학습도 결국 단순 출석이나 시간을 들이는 것 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내겐 올해로 즐긴지 11년차가 된 살사가 그것. 살사 3년차의 나와 11년차인 지금의 나랑. 실력 차이가 얼마나 있을까? 살사 10년, 20년 즐긴 동호인들 중에 매년 조금도 발전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평균적으로, 그냥 살사바만 나가도 실력이 느는 시기는 대략 3년 안쪽 아닐까 싶다.
의식적 학습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건 양치질이나 세수 같은. 우리가 평생 해오는 일상적 행위의 숙련도가 전혀 높아지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보다 양치질이 발전한 사람이 있나? 그냥 무의식적으로 해왔다면 전혀 차이가 없어야 하나. 몇 년 전 치과에서 꽤 꼼꼼히 양치하는 법을 배워 차이가 좀 나긴 난다.
결국 배워야 한다. 의식적으로 배우고 훈련하지 않으면. 그 어떤 분야도 단순 시간만 투입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학습한답시고 단계를 건너뛰면 또 답이 없다. 살사 베이직도 잡히지 않았는데 아돌포 스텝 백날 따라해봤자 살사바에 떠다니는 먼지뭉치 스텝 나오는 거다.
아돌포도 초보 시절을 거쳤다. 아돌포 할배라도 마찬가지다. 4층을 짓고 5층 올렸다. 그렇게 올려 지금 아돌포 위치가 50층짜리 살사계 랜드마크가 된 건데. 이제 4층 짓는 사람이 아돌포 50층 전망대를 따라지으려 하면 안 된다. 겉은 전망대처럼 배낄 수 있지만 실제 50층 전망이 안 나온다.
또 하나, 지(=나)가 단계를 건너 뛰려고 욕심부리거나 무지해서 안 되는 건데. 아, 역시 000은 너무 힘들다. 별로다. 나랑은 안 맞다. 재능이 없다(근데 실제 재능이 없을 수는 있지). 등등의 핑계로 그 분야를 욕하거나 그만두게 되는 빌미로 작동할 수 있다. 배우자, 단계를 거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