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가판에서 멸종될 ‘경험의 멸종’

내가 기술 낙관주의자 임을 먼저 밝혀야겠다.

그러니 작가 논조에 기본적으로 비판적인데,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2만원 주고 300쪽짜리 책을 읽는 내내 화 내면서 볼 필요는 없으니.

334쪽까지 다 읽고 뭔 생각이 들었냐면. ‘밥 먹으면 배부르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탈 난다. 적당히 먹어야 할 것이다.’ 따위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 놨나 싶다.

어느 기술 지상주의자도 사례로 나오는 ‘게임하다 애 밥 굶겨 죽이는 가정’을 유토피아로 생각지 않는다.

편집증적으로 보일만큼 기술에 의한 부정적 사례만 모아 만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건, 이 많은 사례를 하나로 꿰는 통찰도 논리도 데이터도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기술로 인해 많은 인간적 경험을 빼앗기는 중이고 그런식으로 너무 가면 위험하다는 큰 틀의 논조와 책에 나오는 개별 사례와 저자 주장에는 내가 또 다 긍정하는 것도 웃긴다.

비유하자면 ‘자동차라는 이동 기술로 인한 부작용, 비만 같은 걸 경계해야 한다. 가끔 걷거나 달리면 좋으니까 종종 그러자’는 수준의 이야기니 뭐 딱히 무슨 반발심이 들까.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얻어갈 수 있는 새로운 게 뭐지? 싶은 책이다.

아니, 다시 들쳐보니 효용이 있다! 손글씨를 조금 더 자주 쓰자고 결심한 것. 분명 종이와 연필로 끄적이는 게 어떤 사건의 초기 정리와 확장에 도움이 되는 건 경험적으로 분명한데. 이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다.”

나는 책을 덮으며 이렇게 답한다. “경험은 소멸되는 중이 아니라 그 습득 방식이 변해가는 것 뿐이다. 그것이 (아마)진보다.”

진보라는게 반드시 옳거나 선하다는 확신은 없다.

별점 1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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