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중의 근본, 관습헌법에 등재된 한양의 중심 종로구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이걸 주거 공간에 대입해보면. 경리단길이니 가로수길이니 하는 핫플레이스는 뜨고 지지만. 국가 주요 시설이 몰려있고. 교과서가 펼쳐진 것 같은 역사 현장이 빽빽하게 들어찬 종로구의 가치는 영원하다.

심지어 수도를 옮기고 싶어도 관습헌법에 명시돼 못 옮긴다는데. 더 말해 무엇하랴.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난으로 이 사회가 전복되기 전까지 이 클라스는 변치 않을 듯.

존버하면 결국 기회가 오는가. 낡은 한옥도 일정 기간 버티고 살아남으면. 그 자체로 힙플레이스가 된다. 정확히는 힙플의 원료. 최대한 한옥 부분을 살리고 에어컨만 집어 넣는게 종로구 힙플 기본 공식이다. 촌스러운 것조차 수십년 반복하면 키치가 되고 마니아가 생기고 시장이 형성되듯. 누추하고 비새는 한옥에도 기회가 온 거랄까(물론 종로구 북촌 등지에 있는 한옥에 한함).

뭐든 스토리가 그럴법하면 사람은 돈을 낼 의향이 생긴다. 앞으로 고꾸라져 토하는 모양이 그려진 셔츠 굿즈가 12만원이다. 저 돈이면 그냥 번듯한 셔츠를 충분히 살 법한데. 대체 누가 사냐 싶었는데. 바로 내 앞 테이블 백인 남성이 불콰해진 얼굴로 바로 사 입더라. 관광객 버프에다가 국민소득이 높아 그런가 싶었다.

버티자! 언젠간 누군간 나의 지금 버티는 순간을 하나의 자산으로 인정해 박제해 줄 지도 모른다. 당시 외국어 맞춤법에 의거한 정당한 표기지만, 지금은 작은 놀라움이 되는 낙원삘딍 현판처럼.

문 열기도 전에 줄 선 타코집. 뭔 타코를 문 열기도 전부터 서서 먹냐 싶다가도. 방금 우리는 냉면집 문 열기도 전에 서 있다가 먹고 나온 사람들 아닌가. 먹거리가 넘쳐나는 도시에서, 줄 서서 기다리게 하는 집이 있다는 게. 뭔가 도시 에너지의 적절한 분배에 실패한거 아닌가 싶네.

탐욕으로 인한 폭등과 과잉으로 인한 거품, 그리고 절정에 이른 거품이 꺼진 자리에 충격, 다시 거품을 모을 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바닥다짐. 이런 순환이 주식 뿐 아니라 요식업계에도 나타나는게 아닐지. 그런 도식이라면, 을지면옥 같은 유명 냉면집들은 너무 장기 우량주인디…

최근 매매 재개한 장기 우량주. 이전 을지로에 있을때부터 단골이던 할배가, 뉴비 고객 할배를 데리고 온 풍경(으로 추정됨)

이쯤 성공한 요식업자라면, 간판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겠지. 새로 오픈한 건물 간판에도 이 을지면옥 폰트를 적용한 듯.

냉면이 뭐 1만 5천원씩이나 하냐는 말은 이제 별 의미없을것. 어차피 이제 직장인들이나 주민들이 매일 같이 먹는 식사가 아니라, 관광객들의 특별한 한끼일테니.

사진은 죄다 먹고 마시는 것만 남았는데. 종로구에 대한 총평. 사고 싶은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 관점에선. 서울 내에서 유일하게 탐나는 지역. 문화적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종로구
– 왜 종로? 종이 있는 거리, 한양 도성문 개폐 시각을 알려주는 큰 종이 있던 거리라는 뜻
– 한양의 근본 오브 더 근본. 정치 1번지이자 행정구역 코드상 기초자치단체 중 최선두.
– 조선인이 모여사는 종로구는 북촌, 일본인이 모여사는 중구 명동 일대는 남촌으로 불림
– 23년 사회안전지수(살기좋은지역) 평가, 서초구 다음 2위. 근본 도심이 가진 문화의 힘 아닐까. 우리 동네가 곧 교과서.
– 종로3가 일명 종삼은 한국 초기 언더그라운드 문화 발상지. 종삼 커피빈이 유명한 게이 집결지라 카더라.
– 3대 이상 서울에서 사는 서울토박이 비율 가장 높음. 8%
– 서태지, 종로구 출생이었네.

낙원상가
– 한국 주상복합 1세대, 초기 남산시민아파트와 함께 고급 아파트의 상징
– 낙원시장 자리에 세워졌고, 특히 떡집이 유명했다. 과거 요정집 밀집지라, 기생들이 끼니를 빨리 떼울 수 있는 떡 수요가 많아서였다고.
– 지금 악기상가는, 그 앞 파고다 아케이드 없애면서 거기 악기상이 들어온 것. 여기 악기상이 모인 건 유흥업소 악기 수요 때문. 더더 올라가면 궁중 악사도 결국 악기를 사고 정비하는 곳이 필요했을테니. 결국 정치 > 권력 > 유흥 > 악기까지 흘러서 낙원에 이르지 않았을까.
– 19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올림픽 즈음 유흥업소 규제를 완화했고, 이때 악기 배워 업소 취업하는 붐 일었다고 함. K-pop 씨앗이 여기서부터?
– 낙원동이라는 지명은 남쪽으로 시내의 낙원이라고 할 만한 탑골공원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장소: 기와탭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1길 74-7 1층
장소: 을지면옥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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