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간의 항해일지를 정리하며

어제 부로 일기장 한 권을 다 썼다.

NHN 채용 설명회에서 받은 A5크기의 공책인데 겉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

 

4341 10 8부터 시작되는 항해일지

 

가고자 하는 항구가 없다면

불어오는 모든 바람이 역풍이다

 

Dream Plan Action


 

10 8일 수 좀 피곤해

12 취침, 8 기상이라는 그럭저럭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 중.

! 하루 여덟 시간 반을 자다니 7 기상만이 살 길이다.

 

 

10 10일 금 신방인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운가

온소리 언론인. 가고 싶지 않았다.

초라해졌을 첫사랑은 만나고 싶지 않은.

그래도, 내가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직시 할 필요가 있다.

성장이 더디다면 거기에는 내 책임도 몇 할.

 

 

10 13일 월 적성검사도 학습과 노력의 결과

수형과 함께 한 저녁, 아웅~ 핸드크림과 저녁대접, 차비 2만원까지 받았다.

그냥 받는 게 아니라 잠시 빚졌다 생각할게요~ 그러면서 덥석 받았지.

그리고 형은 뭔가 급한 모습으로 총총(형의 덩치에 어울리게 하려면 훙훙 정도) 걸어갔다.

 

 

10 17일 금 17전 진행 中

1승만 하면 되는 게 취업. 분명 룰은 상당히 취업자에게 유리하단 말야.

– 이 때는 아주 자신만만 했구만

 

 

10 29일 수 인연을 믿습니까

어제는 멋진 날이었다.

그 이후로 눈물 나는 날이 됐다.

 

 

11 9일 일 목욕의 즐거움

스물 일곱이 50여일 남았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응, 사랑합니다.
오늘도 50일 후에도

 

11 27일 목 잘 가~ 대우증권

항상 그랬다.

믿어 의심치 않던 것의 반격으로 강해졌다.

 

 

12 5첫 눈

제법 생색내게(대구치고는) 눈이 나렸다.

! 나린다는 표현 정말 괜찮단 말야.

전에는 눈이 나리면 연락했던 이들이 누구였던가?

기쁜 소식을 눈 뭉치처럼 던져서 알리고픈

그대는 어디에.

 

 

12 6일 토

정리, 그것은 정교한 리셋

 

 

12 11일 목

피천득은 아끼꼬를 세 번 만났지.

그 중 마지막 한 번은 만나지 않았음이 좋겠다 했지.

과연 나는……

어디까지였으면 좋았을까.

 

 

12 17일 수 다음에 만날 때 더 멋진 모습

한 번 이어진 인연은 언제 어딘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이어지니까.

그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어야!

그러니 당신도 그 때까지 건강해요.

……

집에 가서 라면을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모든 수줍은 것들을 사랑해야지.

 

 

12 20일 토 애늙은이들을 어찌하리오

누가 우리 애들을, 내 후배들을 소름 끼치는 애늙은이로 만들었는가.

이 서글픈 애늙은이들아.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몰라도.

이제 +- 배우면서 미적분을 통달한 듯이 보이는구나.

 

야간자습이 가르쳤냐 체험학습이 가르쳤냐

수능문제 예문에서 보았냐

 

냉철하게 보는 것과 냉혹하게 보는 것은 다르단다.

오히려 추운 곳일수록 사람 몸은 뜨거워야 살아 남는 법이다.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

스스로 다 안다고 생각하는 학생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는 애 늙은이

 

서글프다.

토익책이 몇 십 분째 넘어가질 않는다.

 

 

12 31열 가지 뉴스

너무 생각이 많아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밥은 타든지 식어버릴 테고

마음은 돌아서든지 역시 식어버릴 테니

 

 

2 26일 목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의 하루

심장이 뛴다.

흔히들 아프다고 표현하는 그 중상

달리지도 않았는데 턱턱 막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이리 잘 말해주는 현상이 또 있을까?

 

머릿속 연애는 항상 끝에 가서 심장을 울리게 된다.

양철 나무꾼의 몸통이 다시 진동한다.

다시 한 조각 심장을 얻었다.

당최……

 

사회인 D+1, 더욱 견고히 살아야 한다.

 

 

3 14일 토 행복합니까? 그럼, 나도 행복합니다

 

 

418일 토 길 떠나는 만수에게

필리핀 어학연수, 호주 위킹홀리데이.

이렇게 떠나는 많은 젊은이가 영어 하나는, 하다 못해 토익 LC는 오르지 않겠냐 짐작하지 않을까 싶다.

990부터 5점까지 서는 줄에서 한참이나 앞에 서는 것도 꽤나 뿌듯한 일일 테지.

 

부인하지 않겠다.

실은 나도 부럽다.

 

허나 그곳에 가서 얼마나 앞자리에 설지가 아닌 어떤 줄에 설지, 누구를 좋아하고 어떤 일에 분노할지.

객관적 달성보다 너의 주관적 지향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515일 금 백수인 관계로 올해 스승날은 쉽니다

 

 

78일 수 잘 가, 새마을금고

아주 짤막한 문장이었다.

원체 낙관적이다 보니 합격을 더 믿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이내 다시 낙관적이 됐다.

 

 

712일 일 상승!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라는 말을 전 좋아합니다

 

 

83일 월 꿈은 이루어 진다

2002 월드컵 때 얼마나 촌스러운 문구냐며 비웃었다.

허나 월드컵 후 가장 유명해진 문구가 됐지.

엄아나, 이기자

모두 꿈은 이루어 졌다.

자랑스럽다!

 

 

93

Hate that I still love you

 

 

105일 월

자기직시, 자기객관화

당신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을 쓰고 다시 맨 앞장으로 가서 이렇게 적었지.

 

4341108부터

43421017까지 쓴 항해일지

 

나는 어떤 항구로 가고자 했나.

아직은 어디도 정박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중.

하지만 키를 놓지 않고 시기를 기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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