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송-통일로 도시계획 현장 답사

안보가 국토/도시 계획의 키

박정희-전두환 군사 정권. 아니 더 이전 이승만 정권까지 포함해. 한국 도시와 국토 계획은 안보가 핵심이다. 전쟁 끝난지 70년이지만. 아직 대규모 국토계획은 안보라는 키워드를 넣고 해석해야 풀리는 문제집 같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삼송. 크게 세 영역이었다.

  1. 용사촌
  2. 북한과 70년대 수교가 활발해질 때 활용하려 지은 선전마을
  3. 삼송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부락

삼송의 오늘

자체 선정한 삼송의 오늘을 보여주는 한 장. 고층 오피스와 연결된 지하철 입구에 고추 말리기.

용사촌

마을 입구를 나타내는 비석. 전쟁 등 군에서 다친 상이용사를 위해 나라가 나름의 지원을 해 형성된 용사촌 중 하나인 지축마을. 비석 기증 주체인 충남골재는 아마 이 용사촌 출신 중 자수성가한 분이 아닐까 싶다. 비석 뒷면에는 ‘전력을 다 바쳐 오직 통일’ 같은 간결한 문구가 있는데. 당시 결기가 느껴졌다. 지금은 전봇대와 난간 사이에 끼여 처음엔 몰라보고 지나칠 정도지만. 비석 세운 날에는 아마 굿도 하고 제도 지내고 떠들썩했겠지.

마을 중앙부 쯤에 위치한 용사촌 복지회관. 건물 출입구 정중앙에 복지회관 명패가 박혀있다.

선전마을

70년대 초, 북한과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인력과 기자단이 통일로(의주로)를 통해 지나갈 것이고. 그 때 발전한 한국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 선전 시설로 만든게 바로 이 선전마을이었다. 화려한 전원주택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오히려 그래서 처음으로 단독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단 생각이 든 동네였다. 터나 건물이 소박하지만 주민들이 잘 가꾸고 있다는 인상. 집 앞 주차된 차에 덮개를 씌운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 차를 이만큼 관리하는 만큼 집이나 동네도 관리할 거란 인상이 들었다.

통일로 선전마을(용도로 최초엔 지어진) 위에서 삼송의 신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찍은 한 컷. 사진에는 고저차가 나타나지 않네. 우측의 검문소 쪽으로 들어가면 군부대가 있고, 개발제한구역 표지석도 볼 수 있다.

삼송 원주민 부락

원주민이란 표현이, 무슨 인디안 같은 느낌을 주긴 하는데. 여튼 최근 지어진 연필곽 같은 고층 아파트가 아닌, 원래 삼송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터가 남아있다. 남아있다가 아니라, 거기도 당연히 생활이 돌아가고 있었다.

읍면리에서 볼 법한 ‘가축’이라는 표현을 쓴 삼송 동물 병원. 시골과 신도시가 혼재하는 삼송의 현재를 반영하듯, 가축과 애완이 섞인 안내 문구가 나열돼 있다.

은평구 구파발 역에서 끝나는 통일로 비석

구파발 역 클라이밍장 옆에 세워진 통일로 비석. 자그마치 51년 전 비석이라는 점에 놀랐고. 갈수록 인기 많아지는 생활체육인 클라이밍보다 통일의 인기가 덜하다는 걸 보여주듯. 비석 근처 바닥은 사람들 발길이 드물어 풀이 꽤 자라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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