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란 사람이 참 매력적이긴 한가 보다. 83년도에 쓰여진 일본 작가 글을 2009년에 1판 1쇄를 찍고, 21년에 2판 1쇄로 지금 내가 보고 있으니. 한국 출판사는 분명 수요가 있으니 계속 찍어내는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원작의 출판년도 정도는 표기해주는게 독자에 대한 예의 아닌가 싶은데. ’83년도에 발행된 지식의 단련법’을 살 소비자가 확 줄어들어서 그런가.
속독술 책을 보면 눈을 움직이는 방식이라든가 건너뛰며 읽어도 되는 대목을 구별해내는 방법 등 지엽적인 내용이 주로 적혀 있다. 이런 류의 책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속독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속독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정신의 집중 뿐이다. 그 이외의 어떤 훈련도 필요치 않다.
처음부터 속독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속독은 결과다.
학창시절, 아마 고등학교 때였을텐데. 대구 시내에서 제일 큰 제일서적의 속독술 책과 최면술 책이 놓인 코너를 꽤나 진지하게 서성인 기억이 있다. 안 외워오면 하도 선생들이 패니까. 안 맞으려고 속독술을 배워볼까. 맞아도 아픔을 안 느끼려고 최면술을 배워볼까. 뭐 이런 식이었다.
시간 지나 생각해보니, 속독술 책은 그때 사서 아무리 열심히 봤어도 별로 도움은 안 됐을 듯. 학창시절 불안해하는 그 시간에 그냥 본문을 한번이라도 더 보는 게 덜 맞는 방법이었을텐데. 내 방식은 불안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우회로를 찾으며 되려 불안만 증폭시킬 뿐.
‘속독은 결과’라는 다치바나 아재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