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물질, 30년 전 일본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

‘과학은 최신 글을 문학은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듯. 30년전 노벨 생리학 상을 받은 사람의 인터뷰집에서 생리학을 배울 필요는 없다.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니. 애초에 그러려고 산 책도 아니고. 다치바나 다카시란 아재가 이끌어 내는 인터뷰가 어떤지 보고 싶었다.

가장 필요한 건, 중요한 게 뭔지 아는 판단력

과학은 맡은 영역이 넓고 깊어서 작은 것을 파고들면 연구 대상이 무수히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무엇이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것을 연구하다가 일생을 마칩니다.

과학자임을 자처하며 과학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있든 없든 관계없는 사람들이지요.

실패의 댓가가 아주 싸진 요즘이지만, 아직 과학 분야는 그러지 않을 듯. 이것저것 아무거나 그 순간 좋아하는 일 하다 대박나는 건 요즘 SNS 인플루언서에겐 가능한 스토리지만. 고등교육을 포함해 사회의 여러 자원을 많이 소비해야 진척되는 순수 과학계에선 아직 ‘내가 좋아하는 연구’ 보다 ‘과학계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연구’가 무엇인지 찾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애초에 나만 좋아하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얻어 내기도 힘들테고.

저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연구를 하지 마라’고 해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자주 얘기 하지요.

한 사람의 과학자가 평생 쓸 수 있는 연구 시간은 극히 한정돼 있습니다. 연구 주제는 얼마든지 있지요. ‘꽤 재미있겠는데’라는 정도로 주제를 정하면 정말로 중요한 주제를 연구할 짬이 없고, 그러다 일생이 끝나버려요.

‘이것이라면 평생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제를 찾을 때까지 연구를 시작하지 말라는 겁니다.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젊을 때 가장 필요한 점은, ‘정말 중요한 것을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일입니다.

젊을 때 이 능력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은 뭔가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일생을 마치는 과학자가 많은 겁니다.

책에선, 중요한 주제가 뭔지 알기 위해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말한다. 해당 분야 최첨단에 있는 연구실이나 네트워크에 속해야 한다는 것. 가장자리(즉 변두리 실험실)에 있으면 전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60~70년대에 연구를 한 과학자라 서구 사회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숲을 먼저 본 다음, 숲에서 가장 중요한 나무가 뭔지 파악한 후 해당 나무에 집중해야 하는 원리는 동일하지 않나.

뭔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연구자의 노력이 쌓이기만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연은 논리적이지 않지요. 특히 생명현상이 그러합니다.

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치로 따져 생각하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지요. 자연이 지금 이런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우연일 뿐입니다.

생물의 세계라는 건 몇억 년에 걸친 우연이 쌓이고 쌓여 거기에다 시행착오도 거듭한 끝에 지금 이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야 할 필연성 같은 건 없어요.

인간이 ‘납득할 수 없다’고 해봤자 양자현상은 실재하듯, 자연은 인간의 논리로 돌아가는게 아니다. 한 사람도 타고나는 유전 요소에 그를 둘러싼 환경이란 변수, 마지막으로 랜덤확률이 더해져 매 순간 이뤄지는 것.

항체라는 것은 항원에 맞춰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처음부터 한없이 다양한 생산 능력을 통해 다양한 항체가 준비돼 있어요.

그래서 자물쇠 구멍에 꼭 맞는 열쇠처럼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고, 그런 것이 없더라도 거기에 가까운 것이 나와서 대응하는 거지요. 구멍에 딱 맞는 열쇠가 아니더라도 약간 힘을 주며 비틀어서 열 수 있는 대응 관계라면 되는 겁니다.

한편에서는 항체유전자가 높은 빈도로 돌연변이를 일으킵니다. 그중에서 가장 구멍에 잘 맞는 것이 나오면 그것을 증식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지요. 그런 매커니즘이 있지요.

이 책을 통해 습득한 유일한 생물학 지식인데, 딱 맞는 열쇠가 아니라도 적당히 대응이 되면 된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결국 항체나 항원이나 자연계의 랜덤 박스는 ‘적당히’라는 일종의 유격이 몹시 중요한 키로 작용하네. 군 시절 총기함 열쇠가 워낙 많다보니, 딱 맞는 열쇠가 아니라도 ‘632번 키는 127번 키 대신 자물쇠 딸딸이 쳐서 열 수 있다’는 식의 노하우가 병사들 사이에서 전수된다. 항체도 마찬가지였구나.

지식인의 한계 = 당대 지식의 한계

도네가와는 정신과 물질은 다르지 않다고 얘기한다. 정신도 물질의 복합적인 물리, 화학, 생물학적 반응의 소산일 뿐이라고 본다. 정신이나 마음의 신비라는 것도 우리가 그 작동 원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붙여놓은 관념적 명칭일 뿐이며, 과학적 연구 진전에 따라 언젠가는 그마저 물질의 물리, 화학, 생물학적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본다.

  • 옮긴이 후기

정신 작용도 결국 하나의 화학공장처럼 돌아가는 인간의 신경계에서 벌어지는 화학 신호를 통한 현상이라는 접근이 지금은 너무 당연시 되는데. 30~40년 전 유력 지식인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당혹스러워 하며 몇번이고 되묻는다. 이게 어쩔 수 없는 당대 지식인의 한계다. 지식인의 정의 자체를 생각해보면, 그 시대의 지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식인은 없다. 다만 그 시대의 첨단에 가 있을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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