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독, 스피릿은 알겠는데 스트레티지는 모르겠다.

성공한 기업가의 자서전이 가진 후견지명 측면의 한계다. 성공한 건 알겠는데. 뭐가 성공의 요인인지 모르겠다. 소설처럼 잘 읽히는 건 맞는데, 르포기사처럼 사실과 당시 발언에 기반한 전개라 믿기엔 어렵다. 게다가 자서전 쓴 사람이 작가를 희망하는 칠십대 노인이라면.

다만, 이건 슈독을 경영 서적으로 봤을 때의 한계지, 슈독이 가진 콘텐츠 자체의 한계는 아니다. 누군가는 책에서 ‘무언 가에 미친 놈’이 내는 기운을 얻을 수 있을테니.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나.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짧고, 한정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시간을 목표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써야 한다.

무엇보다 남들과는 다르게 써야 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승리하고 싶었다. 아니, 남에게 지는 것이 싫었다.

토스 이승건 대표의 창업 계기와 유사한 느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업이라는 모험을 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또라이 기질, 안전하게 지내면 병 나는 뭔가를 갖추고 있는 듯.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본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인식은 로동자의 근로의욕 고취에 상당히 중요하다. ‘그냥 돈 받고 하는 거지 뭐’라며 관성적으로 냉소하겠지만, 그런 사람도 진지하게 돌이켜보면 이 요소를 부인하기 어려울 걸.

보험회사는 판매원에게 ‘고객의 위험을 막아 행복을 보장해 주라’며 동기부여한다. 교회의 전도도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이 좋은 말씀과 천국을 알게하라(+가게하라)’는 것 아닌가. 단순히 월말 인센티브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참, 우리집 앞 교회 정문 게시판에 ‘이달의 전도 실적’이 붙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은 아마 유서가 더 깊을 교회한테서 보험업이 배워간게 아닌가 싶다.

“헤세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행복이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 있다

나이키 회장님 리즈시절 전 여친이 식탁에서 건넨 이야기. 결국 어디에 가느냐 보다 누구와 가느냐,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온통 무엇을 먹고 어디에 가고 같은 what에 빠져있지만, 실은 how 다음이 what이다.

오니쓰카 회장은 스시를 먹을 때 타이거의 독특한 밑창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큼지막한 나무 접시와 문어 다리를 보고는, 이와 비슷하게 생긴 빨판을 육상 선수 신발 밑창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바우어만 코치는 그의 이야기를 깊이 새겨들었다.

그때 그는 영감은 흔해빠진 것에서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영감은 우리가 먹는 것에서도 올 수 있고, 집 주변에 놓여 있는 것에서도 올 수 있다.

‘삼류 작가가 작품을 영감을 받으려면 인류가 멸망하는 아마겟돈 정도는 눈 앞에 벌어져야 한다. 하지만 뛰어난 작가는 아내가 밥상에 내려 놓는 숟가락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고병권 씨가 강연에서 그랬다.

대단한 산출물이 안 나오는 건 대단한 인풋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위하지 말 것. 아직 내가 대단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일 뿐이다.

일주일에 6일은 워터하우스에 출근하고 이른 아침, 주말, 휴가는 블루 리본에서 일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사교 활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확실히 내 삶은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훨씬 더 심한 불균형을 원했다. 내가 원한 것은 새로운 종류의 불균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블루 리본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일에만 계속 집중하고 싶었다.

행복한 미친X

결국 우리는 주식 공모를 포기했다. 한마디로 개망신 당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경제가 안 좋은 것을 탓했다. 베트남 전쟁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탓했다.

나는 블루 리본을 과대평가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과대평가 했다.

후반 시리즈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대표 인터뷰에는 이런류 멘트가 많이 나온다. ‘우리 회사의 잠재력을 아직 완전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10만원짜리 수표를 1천원에 파는 식의 상장은 하고 싶지 않아요’

심정적으로는 진짜 거짓이 아닐 거다. 너도 나도 내 맘속 가치평가는 1조짜리 유니콘일 것. 다만, 상장 절차에 들어간다면 철저한 자기객관화가 필요하겠지.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예를 들어, 소니 같은 역할모델이 필요했다. 당시 소니는 오늘날의 애플 같았다. 수익, 혁신, 효율 측면에서도 뛰어났고, 종업원에 대한 처우 면에서도 그랬다. 나는 남들이 대답을 재촉하면, 소니 같은 회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십수년 후 어떤 책에서, ‘당시 애플은 오늘날의 00같았다’라는 문장을 만날 수도 있겠지. 영원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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