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니 박물관이니 뭐니 별 관심없던 분야지만. 많은 이가 좋아하는 데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쓸데없는 에고 부리지 말고, 가보고 먹어보고 겪어보자는 주의로 태도 전환 중이다.
내 주관으로 밀어붙이며 살아야했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넘어진 김에 쉬어가므로 내 테두리 너머 조각을 주섬주섬 잡아 꽂아 넣어 보면서 나를 넓혀 나가야 하는 시기다.
‘뮤지엄산’도 1년 전만 해도 관심 없었을 곳.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가 나와 백수 특권으로 바로 가봤다. 다행인지 이미 제주에서 안도 타다오 아재 공간을 한번 만났더니 친숙하기까지 하다.
첫인상: 첩첩산중, 주차장 부족
매주 월요일 휴무, 화요일부터 영업 시작인데. 나는 화요일 오후 2시경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이 빽빽했다.
주의할 점. 뮤지엄산 입구 바로 옆에 골프장 주차장이 있는데, 여기 주차하면 뮤지엄산에서 주차비를 전혀 지원 받을 수 없다는 것!
근데, 생각하기에 따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있다는 게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고 당하면 빡치지만 애초에 돈으로 여유로운 주차공간을 사겠다면 괜찮은 선택지.
대형카페나 관광지 고객 여정의 시작은 주차장부터인데. 주말에 오면 아찔하겠단 생각. 뮤지엄이 산 정상에 있어 갓길도 전부 경사 심한 곳이라 아수라장일 듯.
평일에 오거나, 아니면 그냥 돈 내고 골프장 주차장에 대자.
뮤지엄산의 시그니처인 ‘아치웨이’를 닮은 호이스트 차량이 주차장에 있어 한 장. 계속 공사중이더라. 확장하려나 봄.
진짜는 여기있지만, 호이스트 차량 아치가 더 건설적이긴 하잖아.
물 있으면 물수제비 띄우고 싶고, 중앙에 쟁반 있으면 동전 던지고 싶고. 이게 한국 관광지 문화.
요즘은 이 아저씨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예술계도 저변을 넓히고 싶다면 작가/작품 설명할 때 즈그들끼리 아는 용어를 좀 풀어쓰는 시도를 병행하는 건 어떨까? 언론사처럼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라’는 강령이 좀 내려와야지 않을지.
‘유기적 조형언어’, 단어를 하나씩 떼면 알겠는데. 붙으니 뭔 소린지 아리송해 GPT한테 물어봤다.
“유기적 조형언어”는 미술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인데, 쉽게 설명하면 자연스럽고 살아 있는 듯한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유기적”이라는 단어는 생명체나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곡선적이고 부드러운 모습을 뜻해요. 예를 들어, 나무의 가지가 자연스럽게 뻗어나가거나 사람의 몸이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죠.
“조형언어”는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이나 스타일을 의미해요. 따라서 “유기적 조형언어”는 작가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부드럽고 생동감 있는 형태나 구조를 사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이게 스타크래프트 하는 사람들이 쓰는 더블넥서스나 빠른앞마당 같은 관용 표현이네. 패션잡지 엘르체 보그체를 즈그들만 쓰는 언어라며 좀 멸시하지만, 실은 국내 박물관 미술관 안내문에 붙어있는 안내체부터 리라이팅 해봐야지 않을지.
아니 뭐여, 이거 색채 감각이 없으니 도록에 있는 얘가 전시된 쟤가 맞는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음. 우고 아저씨 전시 중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 색채감각이 있으면 맞춰보는 재미가 있었을텐데.
제임스 터렐 전시관, 입구에서 도보 7분
‘입구에서 바로 가도 20분 걸리니 지금 곧장 제임스터렐 관으로 가시라’는 말을 표 살 때 한번, 검표 때 또 한 번 들었는데.
내가 정확히 재보니 7분 걸리더라.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간 것도 아니고. 잠깐 사진도 몇 컷 찍으며 갔는데 7분 소요됨. 작정하고 빠른 걸음으로 가면 3~4분 걸릴 듯.
이게 뭔 대단한 정보라 포스팅 중간 제목으로까지 했는지 모르겠으나. 여튼 이런 정보 기재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테니 희소성 측면에서는 정보가 맞네.
제임스터렐 전시관이 추가 요금을 내고 들를 만한 곳인가… 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하지 않을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이것도 보고 가자’
전시 마지막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으니. 경치 값이라 치자.
그 외 관람
안다 타타오 아재가 ‘조선팔도’라는 이름으로 돌무덤을 만들어 놨는데. 웃기게도 팔도 크기가 다 비슷하다. 조선 시대에도 왕이 있는 한양 근처 경기도가 메가시티였을텐데. 제주도, 전라도, 충청도 크기가 다 비슷함.
어이 주목!
주목 시키고 나무 주목은 사라짐. 진짜 이게 설치미술인가?
잔 당 만원 시대
관광지 물가에 무덤덤해졌다 생각했는데. 이곳은 한 수 위였다. 좌 샌드위치 2만 5천원, 우 오미자차 1만원.
분명 이름도 뮤지엄이고 박물관이 맞는데. 왜 뮤지엄산을 나오자, 거대 카페를 다녀왔다는 생각이 드는걸까. 돌이켜보니 이때 충격 때문인 듯.
국내 대형 감성 카페가 너도나도 따라하는 노출 콘크리트의 원조집. 안도 타다오 아재가 만든 초대형 박물관은 살아있다 카페에서 파는 음료라면 한 잔 만원 정도 받아야 하는 거 아잉교! 좀 설득 되어버림.
샌드위치는 이곳 시그니처라고 적혀있어 기대를 했는데. 이 사람들은 이정도 퀄리티에 시그니처를 붙여도 되나 싶은 맘. 원조집이라 비싼 돈을 낼 의향은 있는데, 퀄리티는 따라와줘야지.
직관적이라 재밌는 곳, 종이박물관
기원전 3천경 그림. 그로부터 5천년 후 태어난 나는 감히 저리 그리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예체능은 재능인가.
삼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랑이 베개를 만든게 ‘조상의 지혜로운 유물’이라니. 사주 공부하는 나 조차도 이 설명은 좀… ‘조상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정도로 리라이팅 필요.
위편삼절이란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네. 예전엔 책 종류도 부족하니 진짜 한 권을 여러번 읽는게 일반적이었나 보다. 저 딱지로 500번까지 카운팅이 가능하다니. 그정도로 읽으면 수학의 정석도 다 외우겠다.
혼례예물목록.
지금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샤넬 가방, 보스 양복 등을 적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긴 해. 다만 현대 결혼하는 도시인이 모두 조선시대 양반 집안이냐는게 의문일 뿐.
혼인 날 정하는 쪽이 누군지, 지역마다 남자 측 여자 측 다르던데. 이 자료만 놓고 보면 여자 측이 정해 ‘택일단자’에 넣어 보내는 거네.
이 정도 얼마안 된 고가구가 전시된 걸 볼 때 마다. 저걸 아직도 버젓이 집에서 잘 쓰는 사람이 이런 전시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싶다.
너무 빨리 변한 조선의 생활상. 누군가는 박물관 전시품이 아니라 집안 생활용품이라고.
타다오 아재 전매특허. 노출콘크리트 질감, 상부의 열린 틈, 새어 들어오는 자연광.
나왔다! 안도 아재 초필살기! 에반게리온이 뛰쳐 나올 것 같은 십자가 천장!
예상가에 5를 곱하는 굿즈샵
나무조각 두 개 4만 9천원. 차라리 뮤지엄산이 위치한 원주 참나무로 만들면 신토불이 스토리텔링도 되고 좋지 않을지.
가격은 그럴 수 있다 쳐. 힙색의 이름이 스틸쏘영인 거에 1차 충격, 역설적인 코디 믹스매치에 2차 충격. 오히려 아방가르드 한가?
아예 예술의 영역으로 간다면 차라리 납득.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모나미 60색 볼펜이 너무 혜자스러워, 쓸 일 없는데 가격 만으로 감격해 살 뻔 했다.
총평
화요일 오후 2시에 들어가 5시 조금 안 돼 나왔다. 세시간 소요했지만 모든 공간과 전시를 꼼꼼히 봤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많았다.
포스팅엔 부정적인 느낌 물씬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멀리서 오고 비싼 돈내고 들어갈 이유가 있는 공간이더라. (자꾸 내 머리는 여길 대형 카페로 인지해서,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카페라는 생각이 되돌이표처럼 떠오름)
전시 다 빼고, 정원과 건축물을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사람도 있을 듯 하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인다. 당장은 모르지만 오늘 경험 덕분에 언젠간 또 다른 곳에서 안도 타다오 아재의 눈을 빌려 못 보던 뭔가의 힌트를 얻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