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고객만족도 조사의 한계_현대차 신차고객만족도 조사 응답 후기

올해 5월에 현대차를 샀고, 한달쯤 전 ‘신차설문조사 시행하는데 응하실거냐’는 연락을 받았다.

재직 시절엔 시간당 인건비를 고려해 득이냐 실이냐를 따졌을텐데. 놀고 있으니 뭐든 새로운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꺼이 응했다. 자동차는 관심있는 물건이기도 하고, 설문을 통해 상품이 개선되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

응하겠다 회신 후 한달쯤 지난 것 같은데, 잊을만하니 약속 잡는 연락이 왔다.

조사원과 대면하며 만족도를 조사한다기에 세세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VoC, Voice of Customer. 회사 다닐 때 참 많이 쓰던 단어다.

‘공급자 마인드로 하지 말고, 고객이 진짜 원하는지 물어 봐라. 고객 시각으로 봐라. 고객의 진짜 페인포인트는 뭐냐.’

동네 커피숍에서 조사원 분과 대면으로 20분간 진행한 고객만족도 설문을 끝내고 나니. 이럴거면 대체 왜 대면으로 진행하는지 납득이 안 될 정도다. 조사기관이 칸타코리아던데. 외주 VoC 수집의 한계로 보인다.

조사원은 일사천리로 설문을 얻어가려하고, 설문의 휴먼에러를 없애고 통계적 정확도를 기하기 위해 설계했을 태블릿 속 설문 문항은 건조하기 이를데 없다.

물론 주관식도 있긴 한데, 조사원 분이 천지인 패드로 독수리 타법 타이핑하는데 구구절절 의견을 제시할 수가 없다.

설문 자리에 나가기 전에 아이오닉5를 구매해 좋았던 점 나빴던 점을 다시 한 번 추려 카톡에 메모해 나갔지만, 1분 1초라도 아끼려 분주한 조사원 태도에 이내 나도 평정을 되찾는다.

조사원의 성실도와는 별개다. 그보다 더 위의 레이어. 구조가 문제다.

‘그래, 이 분은 이 분의 롤을 하는 중이고, 내가 제안을 열심히 한대도 그 온도가 현대차에 전해질리가 없다. 그냥 서로의 일을 하자.’

돌이켜보니 나도 15년 동안 다수의 고객을 인터뷰했다. 내가 서비스 제공하는 본사의 정직원이고 서비스 개선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내 고객들도 그리 길고 진솔하게 이야기해줬을리 없다. 태블릿 들고 20분짜리 설문 항목을 체크하는 조사원이었다면 그들도 오늘의 내 스탠스 정도였을 것.

태블릿 설문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본사 직원이 대면하는 게 만능인 것도 당연히 아니다. VoC는 입체적으로 수집하되, 목적에 따라 그 수집 방법도 명확해야한다.

오늘 내 설문을 위해 현대차는 얼마를 썼을까? 조사원 인건비에 교통비, 나한테 준 1만 5천원짜리 기념쿠폰을 감안하면 20분짜리 설문을 위해 5만원 이상 들었을텐데.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통계가 나올까.

1만 5천원으로 책정된 설문 쿠폰도 외주 조사기관이나 발주한 현대차 모두 고민했을 듯. 신차 고객은 어느정도 수입이 있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일텐데. 대면으로 응하는데 1만 5천원 준다고 하면, 쿠폰 때문에 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예 안 주자니 설문에 응할 확률이 너무 떨어질테고.

관성적으로 ‘분기마다 하던 자료니까 하던 방식으로 하자’는 일이라면 잠시 멈추고 자문해 봐얄 것. 현대차와 칸타코리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추후 고객의 소리를 들어야 할 나를 위해 기록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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